[全文번역] 세속적 설교로 변해가는 미국 대학의 졸업식 연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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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칼럼을 고른 이유: 5월은 미국 대학 졸업시즌입니다. 졸업식 연설자로 유명 인사를 모시기 위해 대학마다 경쟁을 벌이고 언론들도 열심히 보도합니다. 우리나라 뉴스에서도 많이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이런 트렌드에 대해 비판한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의 칼럼이 여기 있습니다.

파이낸셜 타임즈 (FT) 2013년 5월 31일자,
세속적 설교로 변해가는 미국 대학의 졸업식 연설들 (Commencement speeches at US universities have become secular sermons) By Gillian Tett

60년전 미국 국무부 장관 조지 마샬은 하버드 대학 졸업식에서 연설을 했다. 1947년 당시 그는 젊은 청중들의 호기심을 일으킬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의 인생에서 있었던 일화나 커리어에 대한 조언을 하는 대신에 그는 미국인들에게 전쟁의 상흔을 입은 유럽 대륙을 구하자는 원대하고 고매한 연설을 했다. “중요한 것은, 유럽이 향후 30-40년간 필요로 하는 외부 물자와 필수품들(주로 미국에서 생산될) 이 유럽이 현재 갚을 수 있는 능력을 뛰어넘는다는 것입니다. 유럽은 추가적인 도움이 훨씬 더 필요합니다” 마샬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그가 고안안 “마샬 플랜” 을 최초로 설명했다. “치료법은 악순환 고리를 깨고 유럽인들의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변했다. 올해 미국의 수백개 대학과 각종 교육기관들이 졸업식 행사를 치르는 중이다. 마샬의 시대와 같이 졸업식은 근엄하며 가장 관심을 끄는 행사다. 놀랍진 않지만 오늘날 미국의 졸업식 행사들은 ‘성인식’과 거의 유사하다. 인류학자라면, 졸업식은 사회적 위치에 변곡점을 찍는 의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졸업식은 사람들이 다음 세대에게 강조하고 싶은 가치를 생각하게 보게끔 만든다.

그러나 만약 마샬이 올해의 졸업연설 – 또는 세속적인 설교 – 을 들었다면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요즘 시대의 에티켓이 겨우 12-15분짜리 짧은 졸업연설을 요구한다는 점은 잊도록 하자. 졸업연설이 사회 전체가 아니라 학생들만을 집중적으로 타겟팅한다는 것도 무시하자. 놀라운 것은 이런 설교를 하는 사회 인사들이 더 이상 노련한 정치인이나 판사, 종교계 리더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대로 작가, 비즈니스 리더, 스포츠맨, TV 스타, 연예인, 과학자들이 대세다. 따라서 올해 졸업한 학생들은 오프라 윈프리 (토크쇼 호스트), 짐 용 김 (세계은행 총장), 줄리 앤드류스 (배우), 애니 레녹스 (가수), 닐 디그래스 타이슨 (천체물리학자), 달라이 라마 (불교계 리더), 아리아나 허핑턴 (언론인), 셰리 맥코이 (에이본 CEO) 등의 연설을 들었다. 정치인과 고위 정부관료들이 있긴 했다. 버락 오바마, 코리 부커, 커스텐 길리브랜드, 마이클 블룸버그도 연설을 했다. 그러나 숫자를 따져보면 문화계 인사들이 정치인의 숫자를 압도한 것으로 보인다. (밝히자면 내가 이 목록을 만드는 데 있어 왜곡이 있을 수 있다는 건 인정한다. 왜냐하면 나도 언론인 중 한명으로서 뉴욕의 Baruch 대학에서 졸업식 연설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다른 흐름도 존재한다. “나(me)”라는 요소다. 50-60년전에는 정치인들은 대중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다. 그들은 고매한 정치적 이상에 집중하는 것을 선호했다. 오늘날 몇몇 정치인들은 여전히 정치에 대해 논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더 이상 그렇지 않다. 대신 졸업식 연설자들 사이에서 휩쓰는 유행은 그들 내면안의 갈등과 자아성찰의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애플의 창업자, 고 스티브 잡스의 2005년 스탠포드 졸업식은 이 점에서 특히 탁월했다. 그는 연설에서 암, 커리어, 그리고 결혼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형성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이렇게 조언했다. “여러분의 인생은 짧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사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그러나 수많은 배우, 작가, 다른 연설자들도 똑같이 했다. 올해 미시간 대학의 졸업식 연설에서 트위터 CEO 딕 코스톨로는 커리어에서의 실패가 어떻게 그를 더 창조적으로 만들었는지, 그리고 “인생의 대본을 짤 수는 없으며, 그저 지금 현재의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어떻게 깨닫게 되었는지 설명했다. 유럽을 구하는 고차원 정책 아이디어 대신에, 말하자면 사적인 자기계발 철학이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독자들 중 일부는 내 이야기에 기겁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연설의 기조가 바뀐 것은 결국 우리가 보다 개인주의적이고 엔터테인먼트에 집착하며 소비자 지향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학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그들의 입에 직접 떠먹여주는 조언이 필요로하는 시대 말이다. 그러나 보다 긍정적인 해석도 있다. 이런 변화가 보다 폭넓고 평등주의적인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60년 전, 마샬 같은 정치인은 일반 대중의 삶과 한참 거리가 먼 세계에 살고 있었다. 지금은 정치인, 사회 지식인, 연예인, 비즈니스 리더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오늘날 정치인은 자신의 ‘개인적 삶’ 에 대해 말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배우, 가수, 토크쇼 호스트 역시 ‘공적인 이슈와 시민으로서 던져야 할 질문’ 들에 대해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졸업식 연설이든, 그 밖에 어디서든지든.

물론 이런 연설들을 실제로 잘 경청한 학생이 과연 있었는지는 답할 수 없는 문제다. 그들이 나중에 기억할런지는 더 알 수 없다. 졸업식장에 도착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매우 피곤한 눈으로 졸업에 안도할 따름이다. 그들의 부모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러한 ‘졸업식 겸 설교’ 의 진정한 가치는 아마도 함께 모았을 때 특별한 문헌이 된다는 점일 것이다. 후세 역사가들은 20-21세기 미국의 리더들이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고 싶었는지 연구할 때 이 문헌을 사용할 것이다. 이렇게 봤을 때 졸업식 연설은 유별하게 감탄스러운 전통이다. 특히, 13분짜리 연설조차 많은 졸업생들에게 ‘길다’ 고 느껴지는 시대에도 말이다.

by gold

출처: 파이낸셜 타임즈

사진출처: 구글 검색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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