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케이스 풍경] 라오스 여행기 3 – 외부 자극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라오스 사람들의 방식
2013/09/06 Leave a comment
“동남아는 항상 더우니까 동남아 사람들은 웬만큼 더워서는 덥다고 느끼지도 않을 거야.”
“라오스는 최빈국이라는데, 살집이 있는 사람을 미인으로 치지 않을까?”
라오스를 여행하기 전에 동남아 사람들에 대해 가졌던 편견 중 두 가지다.
나의 추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나보다도 더운 날씨를 더 못 견뎌 하는 라오스 사람들이 많았다. 둘째 날 숙소를 잡을 때 프론트의 직원은 너무 더운 나머지 축 늘어져서는 돈도 받지 않고 열쇠를 줘버리기도 했다. (다음 날 그 직원은 내가 왔었던 사실도 기억하지 못했다.)
미디어의 영향인지 라오스에서도 마른 체구를 선호하고 있었다. 메콩강변에서 만난 한 라오스 친구는 키 크고 마른 사람이 좋다고 말했는데, 그 옆에는 50여 명 정도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열심히 에어로빅을 하고 있었다. 대중적인 다이어트 방식이라고 했다.
결론은 그들도 우리가 느끼는 것을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더위와 스콜, 그리고 외부 요소에 어떻게 적응하고 대응하는지 이제 조금씩 희미해져가는 기억을 붙잡고 생각해보았다.
1. 더위를 대하는 방식 – 낮 대신 밤을 품다.
“네가 무슨 얘기를 하든지 안 들려. 난 그냥 덥다는 생각뿐이야.”
라오스 여행 첫 날 만난 광장의 한 라오스 사진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 날은 구름이 끼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예상보다 훨씬 시원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래서 광장 벤치에 앉아 바람을 만끽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그는 ‘그저 덥다’고 반복했다. 그는 햇빛을 피하기 위해 짙은 색 우산을 들고 있었다.
그래서 라오스의 생활은 해가 저물 때에야 시작된다.
도시 곳곳의 분수는 더위를 식히는 데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듯 낮에 침묵한다. 어둑어둑해진 다음에야 물줄기를 뻗는다. 야시장이 특히 발달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해가 지고 나서야 시장은 본격적으로 활기를 찾는다. 낮에도 시장을 지키는 상인들 뿐 아니라 주민들도 팔 무언가를 들고 야시장에 자리 잡는다. 라오스의 광장도 저녁에서야 북적거린다. 낮에는 사람 한 명 찾아볼 수 없었던 비엔티엔의 광장은 저녁이 되자마자 앉아서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음악에 맞춰 에어로빅 하는 사람들,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청년들로 꽉 찬다.
2. 스콜을 대하는 방식 – 피할 수 없으니 맞다. 그리고 이용하다.
비엔티엔에서 루앙프라방으로 갈 때 버스를 탔다. 산길을 굽이굽이 12시간을 갔다. 귀가 먹먹해지는 높은 곳에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나는 10시간 정도 산에 사는 라오스인들을 스쳤던 셈인데 이 때 스콜을 대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스콜 물줄기를 온 몸으로 맞는 사람들이었다. 곳곳에서 온몸에 거품을 내고 스콜에 몸을 씻고 옷을 빨았다. 스콜을 온몸으로 맞는 사람들과 직접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자세히 알 방도는 없었지만 적어도 산에 사는 라오스 사람들에게 스콜은 약간의 불편함인 동시에 고마운 선물이기도 한 것 같았다. 나는 산 속에 있는 작은 휴게소 화장실 안에서 스콜 물줄기가 퍼붓는 소리를 들을 기회를 가졌다. 양철지붕으로 덮인 화장실이라 꽹과리를 마구 치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렸다. 스콜의 멜로디를 즐기려고 이렇게 만들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3. 외부자극으로 인한 효과 – ‘하얀 사람’에 대한 남녀의 인식
“뷰티풀 코리안”
내가 라오스에 가서 라오스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다. 라오스 사람들에게는 한국인이 예뻐 보이는 모양이었다. 라오스 청년들에게 저 말을 들을 때마다 이유를 물으면 같은 답이 돌아왔다. ‘피부가 하얘서 예쁘다’는 거였다. 라오스 사람들은 하얀 피부를 매우 중요하고 민감한 미의 요소로 인식하고 있었다.
“하얀 피부가 왜 예뻐?” 내가 예쁜 이유가 하얀 피부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다시 되물었다. 나와 대화를 나눈 라오스 청년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똑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깨끗해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대화를 할 때 나를 가장 씁쓸하게 했던 것은 그들의 표정이었다. 하나같이 자신 없는 듯하고 주눅 들어 보이며 얼굴을 가리고 싶은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 인기 있는 타입이 아니야. 피부색이 까맣잖아……..”
이 대화를 나눈 후 라오스에서 TV를 볼 때마다 나는 피부색을 살피게 됐다. ‘피부가 하얀’ 한국사람이 나오는 한국 드라마, ‘피부가 하얀’ 서구 사람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가끔 라오스방송프로그램도 엿볼 기회도 있었다. 라오스 사람들이라기엔 비정상적으로 피부가 하얀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대화를 나눈 유일한 라오스 여성인 Vilay도 하얀 피부를 가진 남자를 좋아한다고 했다. 단지 그 이유가 미묘하게 달랐다. “피부가 하얀 사람이 힘이 세 보인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매니저처럼 지시하는 사람들은 거의 하얘. 그리고 돈을 더 잘 버는 사람도 피부색이 하얗지. 그래서 하얀 사람이 좋아.”
김정현
* [에이케이스 풍경] 라오스 여행기 이전 글을 보시려면
– [에이케이스 풍경] 라오스 여행기 1 – 그곳도 누군가가 그리는 고향이다. http://acase.co.kr/2013/09/03/laos1/
– [에이케이스 풍경] 라오스 여행기 2 – 만남, 생각, 그리고 기록 http://acase.co.kr/2013/09/04/laos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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