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채홍의 디자인커뮤니케이션 33] 소화전·소화기 안내 사인 다시 보기 – 안전을 위한 디자인적 고려가 필요하다.

1. 은색 바탕에 금색 글자는 잘 안 보인다

혹시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 ‘소화전’과 ‘소화기’ 표시를 눈여겨 본적이 있습니까?
예외 없이 은색의 스테인리스 재질 위에 ‘소화전’, ‘소화기’라는 글자가 금색의 금속재질로 돌출되어 있습니다. 일단 은색과 금색 대비가 약해서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눈에 띄게 하려면 별도의 장치가 더 필요합니다. ‘소화기’함 위에 별도로 빨간색 강조 표시를 만들어 붙인 곳이 많습니다. 지하철 숙대입구역 소화전은 스테인리스 재질 위에 흰색을 덧대어 글자가 더 잘 보이도록 애쓴 흔적이 있습니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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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흘려 쓴 궁서체는 과연…

소화기·소화전 글자체는 ‘궁서체’인데요. 자세히 보면 초성·중성·종성이 분리되지 않도록 한 글자로 흘려 썼습니다. 제작공정에서 글자를 붙일 때 삐뚤빼뚤하지 않고 간편하게 붙이려고 흘려 쓴 것입니다.

궁서체는 조선 시대 상궁들이 붓으로 널리 쓰던 손글씨체입니다. 두꺼운 붓의 느낌 때문에 고풍스러운 느낌이 역시 강합니다. 요즘엔 B급 대중문화의 ‘키치’적 감수성을 전달하려고 할 때 많이 활용합니다. 소화기·소화전과 같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장치에 쓰기엔 좀 어색한 폰트라 생각합니다.

3. 악조건에서도 잘 보이는 글자

안전이 중요한 공공장소에의 글자꼴은 악조건에서도 충분히 잘 알아볼 수 있는 게 중요합니다. 폰트 디자이너 고바야시 아키라는 “폰트의 비밀”이라는 책에서 많이 쓰는 글자꼴 세 가지를 흐릿하게 만들어 ‘식별성’의 차이를 보여줍니다(158-159쪽). 악치덴츠 그로테스크, 헬베티카, 프루티거 세 가지 폰트입니다. 같은 고딕 계열(산세리프체)이지만, 그림에서 보듯 프루티거는 많이 흐려져도 식별할 수 있습니다. 곡선의 모양과 글자 가운데 공간의 차이가 선명함의 차이를 만듭니다. 인천공항의 안내 사인 영문 글자체가 프루티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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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본에 갔다가 본 소화기·소화전은 빨강 바탕에 흰색 글자(고딕 계열)이거나, 흰 바탕에 빨강 글자여서 눈에 잘 띄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안전을 고려해 소화기·소화전의 색 대비와 글자꼴 선택에 좀 더 신경 써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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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채홍

참조: 고바야시 아키라, “폰트의 비밀”, 이후린 옮김, 예경, 2013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 지음, “타이포그래피 사전”, 안그라픽스, 2012

[에이케이스 풍경] 새롭게 선보이는 상품 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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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와 이번주 연이어 따끈따끈한 새상품이 사무실에 도착했습니다.

오렌지색과 검정 대비가 눈길을 확 끄는 서류케이스와 세가지 색상의 가죽 북커버입니다.
제품엔 에이케이스, 피크15, 더랩에이치와 세 회사의 프로젝트 그룹인 퍼블릭스트래티지 로고가 조그맣게 찍혀 있습니다.
소박하게나마 결과물을 자축하며 에이케이스 독자여러분께 보여드립니다.
올해 초부터 피크15 디자인커뮤니케이션 연구소에서 준비해 만든 디자인 상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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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커버는 책을 들고 다니며 읽을 때 훼손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공공장소에서 굳이 남에게 무슨 책인지 보이고 싶지 않을 때 유용합니다.
샘플을 만들 때 그다지 실용적인 제품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고급스런 재질의 좋은 제품이라면 하나쯤은 갖고 싶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좋은 가죽을 선택하고 작은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써서 만들었습니다.

문서케이스는 인조가죽과 플라스틱을 조합해 문서를 넣을 수 있는 포켓을 앞뒷면으로 만들었습니다.
손에 드는 작은 서류가방처럼 활용할 수도 있는 아이템입니다.

우리는 컨설팅 과정에서 만나는 ‘생각의 도구들’을 하나씩 만드려고 합니다.
이 두 제품이 첫 출발입니다. 지켜봐주시길 바랍니다.

디자인커뮤니케이션 연구소 서채홍

[서채홍의 디자인커뮤니케이션 32] 책을 사랑한다면 책 수리 기술을 익히자

1. 가자, 동네 서점으로.

지난주 주요 인터넷 서점 서버가 마비되는 북새통 속에 나도 있었다. 모바일 주문이 안 돼 이상했다. 아내가 부탁한 책을 어찌어찌 주문하고 나서야 다음날이 새로운 도서정가제를 시행하는 날이라는 것을 알았다. ‘앞으로 읽어야 하거나, 읽을 가능성이 높은’ 양서를 장바구니에 급히 채워 넣는 동료를 보고 맘이 흔들렸으나, 결제로 넘어가지 않는 대답 없는 화면을 쳐다보곤 포기했다. 그리곤 저녁에 홍대 앞 동네서점 ‘땡스북스’에 갔다. 디자이너가 좋아하는 책들이 잘 선별되어 있어서 가끔 들르는 곳이다. 역시나 인터넷 서점·대형 오프라인 서점에서 쉬 발견할 수 없는 책들이 군데군데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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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릿느릿 배다리씨와 헌책 수리법”
이날 나를 사로잡은 책이다. 찢어지고, 벌어지고, 책등이 분리된 경우까지 책 수리하는 법을 모은 책.

1) 상태를 보자. 오래된 책에 낙장이 생겼다. 내 마음까지 낙장된 기분이다.
2) 목공용 풀을 면봉에 묻혀 소량 발라준다. 많은 양을 바르면 추후 다른 페이지의 책장이 벌어지니 주의하자.
3) 무거운 책으로 눌러 하루 정도 둔다.
4) 낙장이 생긴 페이지를 살펴보면 잘 붙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완전히 벌어지지 않는 단점이 있다. 그렇다고 배다리씨를 원망하진 말자.
(45~47쪽, ‘떨어져 나간 책장 수리 – 오래된 책 수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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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간추린 수리 과정이 꼼꼼하다. 헌책에 생긴 낙장과 새책에 생긴 낙장 수리법이 다르다. ‘찢어진 책장 수리’ 편도 종이가 두꺼운 책과 얇은 책으로 나누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책장이 조금 찢어졌을 때 무심코 스카치테이프를 붙이기보다는 이 책을 따라 조금만 공을 들이면 거의 감쪽같이 고칠 수 있을 것 같다.

2. 헌책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은 디자인

책 디자인을 한번 살펴보자. “느릿느릿 배다리씨와 헌책 수리법”은 124쪽 분량에 크기도 아주 작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귀여운 매뉴얼 북이다. 수리의 핵심을 잘 간추린 덕분에 레이아웃이 간결하고 지면 여백이 넉넉해서 보기에 편하다. 모든 글자와 사진을 가운데 정렬로 맞춰 시선을 책의 가운데로 모았다. 고전적인 느낌이다. 어쩐지 선비처럼 정좌하고 경건하게 책 수리에 임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너무 긴장하지는 말자. 수리법을 일러주는 말투가 재밌고 친근해서 따라가기에 부담이 없다. 수리법 중간에 쉬어가는 페이지로 나오는 헌책방의 요정 ‘배다리씨’ 인터뷰도 정답다. 이 책의 탄생 배경과 훈훈한 책 사랑을 친근한 캐릭터의 입을 빌려 독자에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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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본은 책 수리법을 알려주는 책이 튼튼하지 않으면 곤란하므로 실로 맸다(사철). 책이 쫙쫙 펼쳐진다. 책 수리할 때 옆에 펼쳐놓기 좋다. 분홍색 색지에 짙은 파란색 한 가지만으로 인쇄해서 의도적으로 옛날 인쇄물 느낌을 냈다. 본문에 쓴 두꺼운 명조와 고딕 조합의 글자체 또한 옛날 느낌을 더해준다. 실매기 제본 뒤에 하드 커버를 붙이지 않고 그대로 마감해버렸다. 두툼한 커버가 사라지고 책 등에 그대로 드러난 실 꿰맨 자국·풀 자국은 수공예적 냄새를 강하게 풍긴다. 표지가 사라진 느낌을 하얀색 종이를 감싸서 보완했다. 헌책 수리법를 알려주는 이 책은 새책이지만, 헌책에 대한 애정을 담으려 애쓴 디자인이다.

3. 책의 생로병사

나는 책 디자인을 한동안 해온 터라 언제나 새 책을 만드는 생산현장에 있었다. 책의 생로병사 주기 안에 ‘생’에만 집중했다. “느릿느릿 배다리씨와 헌책 수리법”을 만든 이들은 ‘로병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다. 책 만든 품새를 보며 만든 이들을 짐작해보는 것도 책을 즐기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이들이 수리를 위해 고른 책은 나름 한 시대의 위엄을 가지고 있는 책들이다. “종이접기2”,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퐁네프의 연인들”, “기형도 전집”, “멋지다! 마사루” 등. 풀을 바르고 무거운 책으로 눌러 말릴 때는 언제나 육중한 “세계철학사”를 썼다. 고른 책들만으로도 뭔가 여러 가지 얘기를 상상해볼 수 있다. 문득 책장 속의 옛 책들을 꺼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아끼는 책, 오래 간직하고 싶은 책이 다쳤을 때 애틋한 마음으로 어루만지고자 하는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당신의 책장이 오래된 책으로 오래도록 아름답길 바라며.

서채홍

*작은 서점들에서 판다. 유어마인드, 땡스북스, 스토리지북앤필름, 더북소사이어티, 헬로인디북스 등등. 알라딘에서도 판다.

[서채홍의 디자인커뮤니케이션 31] 평범한 사람들이 들려주는 소박하지만 특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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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괜찮은 잡지를 하나 발견했다. 소규모 책방에서 파는 소규모 출판물이다. 잡지 제목은 <그랜드매거진 할>. 표지에 ‘할’ 한 글자가 날카롭게 시선을 붙잡는다. 표지 한가운데 떡 버티고 서서 뭔가 할 말 있다는 표정이다. 글자 한 자가 가진 에너지가 대단하다. B급 정서가 엿보이는 복고풍 글자체 제호와 오른쪽 아래 평범한 명조 글자체 ‘멋’이 기이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어색한 느낌이 역력하지만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도대체 뭔 잡지야?’

“<그랜드매거진 할>은 memories can’t wait이라는 슬로건 아래 평범한 그랜드세대의 소박하지만 특별한 이야기를 수집합니다. 누군가의 할아버지 할머니로만 머물기엔 여전히 할 말도 많고 할 일도 많은 그랜드세대. 그들의 이야기는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보다 비장하고, 지나간 옛사랑의 편지만큼이나 아련하며, 주말드라마 예고편보다 더 두근두근합니다. <그랜드매거진 할>은 수많은 당신과 그들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또한 그들처럼 ‘그랜드’한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당신의 인생을 지지합니다.”

책 날개에 이렇게 쓰여있는 걸 보고 잡지 제호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할머니·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루는 잡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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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랜드매거진 할> 창간호 주제는 ‘멋’이다. Tailor 황재홍, Hairdresser 권인숙, Shoemaker 심복석, Model 허미숙, Singer 차도균. ‘멋’과 연관된 일을 하는 사람 다섯의 인생역정을 담담하게, 때로는 드라마틱하게 들려준다. 묻고 답하는 인터뷰 형식이 아니라 그냥 곁에서 술술 풀어내는 말을 옮기듯 써놓았다.

– 우리 업계 사람들이 모이면 아직도 “저 사람이 3만 원 가지고 양복점 차린 사람이야”라고 수군대요. 근데 지금도 맨몸이 되면 나는 다시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게 꼭 돈만 갖고서 하는 게 아니잖아요. 이젠 노하우라는 게 있으니까. 나한테는 실패가 준 능력이 있으니까요. 실패가 준 능력은 이런 아주 사소하고 아주 특별한 것들이에요. 그 능력으로 나는 또 오늘을 살아요. 말하자면 나는 아주 멋지게 실패한 사람인 거예요.(황재홍 할아버지, 35쪽)

– 손님이 한 사람뿐이어도 만족해. 욕심 부려 봐. 내 몸만 상하지. 나 찾아오는 손님들은 이따금씩 머리 하고 가면서 내 손을 꼭 잡고 “나 죽을 때까지 해줘.” 그러셔. 그러면 내가 그러지. “아파서 누워 계시면 내가 찾아가서 머리 깎아드릴게. 걱정마세요. 머리만큼은 내가 지켜드릴께.” 그렇게 욕심 없이 사니까 괜찮아. 지금은 아이들도 다 커서 시집보냈잖아. 아이들 키울 때는 마음이 바빠. 다 벌어먹여야 하잖아. 애 낳고 키우는 건 맨땅에서도 헤엄쳐야 되고, 물속에서도 헤엄쳐야 되고 난관이 많거든. 재밌는 일도 많지. 이 애가 나중에 커서 어떻게 될까 기대할 수 있으니까. 이제는 그나마도 다 끝났어. 나 혼자 하루 세끼 꼬박 먹고, 너무 편하지.(권인숙 할머니, 53~55쪽)

– 늬들도 지금은 젊지만 눈 깜빡 두 번만 해봐. 금세 오십 대 되어 있을 걸. 앉아가지고 내 나이가 얼만가 세다 보면 어느새 오십 되어 있다니께. 그만큼 세월이 빨리 간다는 겨. 그러니까 젊을 때는 맘대로 살아. 개판으로 살아. 세상 구석구석 여긴 어떤가, 저긴 어떤가 구경은 다 해봐야 할 것 아녀. 실컷 다녀. 못 가볼 데가 어디 있어. 깜빵도 가봐. 거기 뭐 도둑이 들어, 불날 일이 있어. 때 되면 밥 주지, 재워 주지. 애인 못 만나 아쉬운 게 좀 흠이겠지만, 돌아보면 다 좋은 게 있는 법이라니께. 그러니까 누구 눈치 볼 것도 없어. 그냥 늬들 맘대로 살아. 그럼 좋아.(심복석 할아버지, 95쪽)

모두 곁에서 말하는듯 하다. 나중에 ‘멋’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 한마디씩 근사하게 덧붙일 때쯤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직접 찾아가 들으면 며칠을 듣고, 수없이 샛길로 빠져나갔다 돌아오곤 했을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가 구수한 입담으로 잘 요약되어 있다고나 할까. 손에서 놓지 못하고 순식간에 읽게 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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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편집과 디자인이 이야기의 힘을 조금만 더 받쳐주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그래도 책 만드는 이의 즐거움과 정성이 느껴지는 잡지다. 어떤 면에선 잡지라기보다 단행본에 더 가깝다. 잡지에선 잘 쓰지 않는 책 날개를 그것도 아주 넓게(그랜드하게) 만들어 넣은 걸 보면 은연중 한 권의 완결된 단행본으로도 보이길 바랐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그랜드매거진 할>은 수없이 듣고 만든 책이다. 나이 든 분들의 평생 살아온 얘기를 이 정도로 풀어내려면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낯설고 어색한 풍경이다. 젊은 사람들이 평범한 노인을 찾아가 살아온 얘기를 듣는 모습은. 얘기하는 사람에게도, 듣는 사람에게도 말이다. 그들 젊은이가 처음 무슨 생각으로 이 일을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잡지 속엔 무심코 지나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시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나도 가졌고, 내 아버지·어머니도 가진 소박하지만 특별한 이야기.

서채홍

*유어마인드, 헬로인디북스, 1984 등 작은 서점에서 판다.

[이달의 책] “커뮤니티 디자인” – 사람과 사람을 잇는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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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크15와 에이케이스는 다달이 ‘이달의 책’을 골라 함께 읽고 소감을 나누고 토론하고 있습니다. 이달엔 “커뮤니티 디자인(야마자키 료 지음, 민경욱 옮김, 안그라픽스, 2012)”을 읽었습니다.

1. 만드는 디자인에서 만들지 않는 디자인으로.

‘커뮤니티 디자인’이란 간단히 말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를 이끌어내는 디자인이다. 이 책의 저자 야마자키 료는 건축가, 랜드스케이프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주택과 공원 등 하드웨어를 설계하고 디자인해왔다. 기존 공간을 허물어 대규모 뉴타운을 짓고, 그 곁에 공원을 만드는 도시화 과정은 살기에 편리할지는 몰라도 사람들 사이의 교류는 눈에 띄게 줄었다. 최근 50년간 일본은 ‘무연고 사회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우울증, 자살, 고독사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이는 비단 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농·어촌·산간 마을에도 인구가 줄면서 비슷한 문제를 겪는다. 야마자키 료는 이런 상황에선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서 벗어나 ‘인간관계의 교류를 디자인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물음으로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이 책은 그 시도를 다양한 사례로 보여준다.

2. 지역 커뮤니티를 만들어 공원을 조성하고 운영한다.

공원은 하드웨어만 잘 갖추었다고 사람이 지속해서 찾지 않는다. 효고 현에 있는 아리마후지 공원은 지역 커뮤니티를 활성화해 해마다 비약적으로 방문객이 늘고 있다. 연을 만들어 날리는 커뮤니티, 늪지 식물을 관찰하는 커뮤니티, 놀이와 자연관찰 커뮤니티, 공원 센터 안에서 컴퓨터 교실이나 연주회도 진행한다. 활동하는 커뮤니티 숫자도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이들이 입장객을 맞이하고 함께 즐기는 공원이 되었다.

오사카에 있는 이즈미사노 구릉 녹지는 공원 조성 단계에서부터 주민이 참여하고 있다. 공원 예정지인 황폐해진 뒷산에 들어가 마음에 드는 장소를 좋은 공간으로 바꾸고, 그곳에서 하고 싶은 활동을 전개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일을 할 ‘파크레인저’를 양성하기 위해 해마다 지역 주민 가운데 40명을 뽑아 총 11회 강좌를 실시한다. 이를 수료한 사람이 파크레인저로 활동한다. 공원의 하드웨어 정비를 기존의 20%로 줄이고 나머지 80% 자원을 소프트웨어에 투입해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커뮤니티를 이용해 공원을 만들고, 완성된 공원을 운영하는 담당자를 디자인하게 된다.

3. 지역 주민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출발한다.

오사카의 요노 강 댐 건설이 중단되자 주민들은 몹시 반발했다. 홍수 예방과 모아둔 물의 활용 모두를 검토한 결과, 미래에 꼭 필요하지 않다는 타당한 판단이었지만 자신들의 터전을 내놓으며 희생한 주민들은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지역 피해 보상으로 제시한 건설 사업도 중단 위기다. 국토교통성과 지역 주민을 중재하기 위해 대학생들을 투입한다. 대학생들은 먼저 마을의 부녀자들과 만나 친교를 맺는다. ‘아줌마 네트워크’를 강화해 지역의 특색을 공유하고, 지역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가운데 댐 사업과 제반 사업이 정말 필요한지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다. 현지답사와 조사한 내용을 모아 자료집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보고회를 열고, 지역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며 지지를 이끌어낸다.

지역에 직접 들어가 주민들과 만나고 얘기를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 책을 읽는 내내 느꼈다. 야마자키 료는 커뮤니티 디자인에 필요한 것은 ‘발군의 미소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라고 말한다.

4. 협력을 위한 워크숍 기술

책에 실린 사례마다 다양한 ‘워크숍’이 나온다. 지역 주민의 얘기를 듣거나 의견을 나누는 과정, 교육 과정, 아이디어를 만드는 과정 모두가 여럿이 함께하는 ‘워크숍’ 형식이다. 책상머리에서 혼자 하는 디자인이 아닌 협업이 필수인 일이라 그럴 터이다.

7개 섬으로 이루어진 가사오카 제도의 종합진흥계획을 세울 때 어떻게 워크숍을 활용했는지 간단히 살펴보자. 7개 섬이 저마다 이해관계가 달라 협력해서 종합진흥계획을 세우기 쉽지 않자, 섬의 어린이들이 어른들에게 종합진흥계획을 제안하는 방식을 택한다. 섬의 인구는 점점 줄고 어린이 수도 준다. 해가 갈수록 섬의 미래가 어두운데도 어른들은 행동하지 않는다. 7개 섬 5학년 이상 아이들 13명을 모아 4회에 걸쳐 워크숍을 시작한다.

1) 모두가 한마음으로 한팀이 되도록 게임 진행 2) 섬의 미래를 생각하는 일의 의미 전달 3) 섬의 특징과 과제 함께 찾기 4) 섬을 더욱 깊이 알기 위해 현지 조사 5) 마음에 드는 장소 사진으로 남기기 6) 10년 뒤의 이상적인 섬의 모습 생각하고 이야기하기 7) 섬 어른들 인터뷰 8) 전국의 마을 만들기 사례 조사

이 과정을 거쳐 ‘어린이 가사오카 제도 진흥계획’이 나왔다. 이 계획은 가사오카 시의 낙도진흥계획을 책정할 때 중요한 자료와 행정적 지침이 된다. 7개 섬 주민을 모은 발표회에서 어린이들은 연극형식으로 제안을 발표했다. 빈틈없이 꼼꼼하다. 그리고 흥미진진한 과정이다.

5. 좋은 아이디어는 ‘아니오.’라고 말하지 않는 데서 나온다.

이 책을 읽기 전인 지난 5월. 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주최한 야마자키 료의 강연을 우연히 들었다. 강연 내용도 인상적이었지만, 마지막에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방법을 체험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갑자기 무대에서 청중 사이로 내려온 야마자키 료가 옆 사람과 둘씩 짝을 짓게 했다. 모르는 사람과 둘이서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이었다. 처음엔 한 사람이 무엇이든 좋으니 제안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무조건 ‘아니오’라고 말하며 거듭 거절·부정하게 했다. 나중엔 상대의 제안에 자신의 제안을 덧붙여 아이디어를 만들도록 했다. 야마자키 료의 결론은 이랬다. ‘아니오’라고 말한 순간 상대는 마음을 닫고 말할 의욕을 잃게 된다. 터무니없는 얘기라도 거기에 다른 생각을 덧붙이다 보면 멋진 아이디어로 발전한다. 절대 ‘아니오.’라고 말하지 말 것!

내 옆자리 짝은 ‘이 강연 끝나고 친구와 함께 청계산에 가기로 했다. 청계산이 참 좋다는데 같이 갈 생각이 있느냐?’는 제안을 했다. 나는 끝나면 ‘딴 데 갈 데가 있다’고 거절하고, ‘청계산 이미 가봤다. 굳이 또 갈 생각 없다’며 재차 거절했다. 그다음 거절하지 않고 아이디어를 덧붙일 땐 ‘그럼 내가 볼일을 마치려면 두세 시간이 걸리는데 시간을 좀 늦추어 같이 출발할 수 있겠느냐’고 제안했고 상대가 제안을 받아들였다. 물론 우리는 야마자키 료가 시키는 대로 충실히 따라 했을 뿐이다. 강연이 끝나고 ‘약속(?)’과는 다르게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지만, 만약 실습 시간이 길어서 상대와 더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면 어찌 됐을지 모를 일이다. 사람 사이의 교류는 우선 얼굴을 맞대고 만나는 데서 출발하는 건 틀림없는 것 같다.

서채홍

책 사진: 박혜림

[서채홍의 디자인커뮤니케이션 30] 타이포그래피만으로도 충분한 인포메이션 디자인 – 보기 편한 월드컵 경기 일정표

2014 브라질 월드컵 막이 올랐습니다.

온나라가 큰 아픔을 겪은 뒤라 월드컵을 맞는 사람들의 반응이 차분하게 느껴집니다.

경기 일정을 확인하고 싶은 분들에게 웹사이트 brazilfourteen.com을 추천합니다.
전체 경기 일정이 달력 모양으로 정리된 단순한 사이트입니다.
화려한 그래픽 이미지 하나 없이 타이포그래피만으로 정보를 알기 쉽게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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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위 메뉴에 아이콘이 세 개 있습니다.
옷 모양 아이콘 메뉴에 들어가 Group H에 있는 South Korea를 고르면 웹사이트 전체가 우리나라 선수 유니폼 색깔로 바뀝니다.
색이 강렬합니다. 한국 경기 일정만 진하게 표시돼 알아보기 쉽습니다.
경기 일정도 자동으로 한국 시각에 맞춰 표시됩니다.
땅이 넓어서 한 나라 안에서도 시차가 있는 경우는 시계 모양 아이콘 메뉴에 들어가 고칠 수 있습니다.
구글 캘린더에 일정을 표시하고 싶다면 마지막 세 번째 아이콘 메뉴에서 구독을 설정하면 됩니다.
나라별로 색깔을 바꿔가며 유니폼 색을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단순한 듯 보여도 사이트 방문자의 바람을 잘 고려한 반응형 웹 사이트입니다.
경기 결과에 따라 일정도 즉시 업데이트 될거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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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있는 디자인 스튜디오 Karoshi에서 월드컵을 기념해 자체 제작한 프로젝트라고 합니다.
경기일정표를 한정판 종이 포스터로도 만들었습니다. 경기 결과를 포스터에 표시할 수 있도록 펜과 함께 제공한다고 합니다.

서채홍

brazilfourteen.com바로가기: http://brazilfourteen.com/

참조와 그림 출처: teamkaroshi.com

[서채홍의 디자인커뮤니케이션 29] 피어나고 지는 생명의 모습을 아름답게 그린 뮤직비디오 ‘moving on’

1.
영국 록 밴드 james의 신곡 ‘moving on’ 뮤직비디오를 소개합니다.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습니다.
뜨개질에 쓰는 노란색 털실만으로 사람과 사물을 표현했습니다.
환한 빛이 가득한 배경에 사그라지는 생명과 새로 태어나는 생명을 아름답게 그렸습니다.

 

 

병상에 누운 부모의 몸은 실이 풀려나가며 조금씩 사라집니다.
자식은 하늘로 풀려 올라가는 실을 애처롭게 붙잡아 내립니다.
부모는 부드러운 낯빛으로 고개를 젓습니다.
자식은 병상에 나란히 누워 마르고 앙상한 부모의 몸을 껴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실 한 올이 하늘로 올라가는 순간까지 안타깝게 지켜봅니다.

애니메이션은 죽음을 맞이하는 정적인 화면과 대비되는 새 생명이 탄생하는 역동적 화면을 번갈아 보여줍니다.

젊은 여자가 춤을 춥니다.
한순간 하늘로 뻗은 자기의 실을 잡아당기더니 두 가닥으로 쪼갭니다.
여자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잉태 과정이 뭉치고 이어지고 꿈틀대는 실로 나타납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의 실이 다 풀려 올라갈 때 여자의 품 안엔 하늘에서 내려온 실이 스르르 감기며 작은 아기로 태어납니다.

2.
무엇보다 ‘털실’ 한 가지를 가지고 이렇게 풍부한 의미와 표정을 만든 것이 놀랍습니다.
사람과 식물, 물건의 뼈대에 털실을 촘촘히 감아 형태를 만들고, 살아 있는 생명에는 실 한 가닥을 하늘로 이어 놓았습니다.
마법과도 같이 생명은 실이 스르르 감기며 내려왔다가 스르르 풀리며 하늘로 올라갑니다.
빛으로 충만한 화면과 순간순간 보풀이 살아 움직이는 노란색 털실은 음악이 흐르는 내내 부드럽고 따듯한 감성을 유지합니다.

애니메이터는 털실이 가진 시각적 의미의 층을 더 깊이 들여다봅니다.
도입부 병상 장면에서 가로로 길게 보여주는 한 가닥 실은 꼬인 내부를 펼쳐 성긴 밀도를 표현합니다.
반면, 새 생명이 잉태되는 과정의 실은 복잡하고 촘촘한 밀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미경으로 들여다 본듯한 실은 우리 몸속의 수많은 세포와 유전자처럼 보입니다.
생명은 작고 가느다란 실이 촘촘하게 묶여 이루어져 있는 셈입니다.

3.
문장 하나가 떠오릅니다.
“우주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아주 작은 이야기들로 우주는 이루어져 있다.”
The universe is not made of atoms; it’s made of tiny stories.(조셉 고든 래빗의 “The Tiny Book of Tiny Stories”에서)

털실의 가느다란 가닥 속에는 분명 수많은 이야기가 들어있을 겁니다.
사라지고 또다시 만드는 삶의 얘기들.
우리 생애는 그것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을까요?

서채홍

* 애니메이션을 만든 에인슬리 헨더슨(Ainslie Henderson)의 이력이 흥미롭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1979년 태어났다. 일찍이 밴드 활동을 했고 꽤 재능을 인정받은 모양이다. BBC 리얼리티 쇼 Fame Academy에 출현해 인기를 끌기도 했다. 2006년에 1집 앨범 Growing Flowers By Candlelight를 냈다. 애니메이터로서의 수상 이력은 2013년 제66회 영국아카데미시상식 최우수 단편애니메이션상, 2013년 제37회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특별심사위원상 외 다수가 있다. 국내엔 제천국제음악영화제(10회)에 ‘나는 톰 무디 I Am Tom Moody’로 소개되었다. 음악가 출신답게 영상과 소리의 매칭이 훌륭하다.

* 에인슬리 헨더슨의 이력과 작업에 관한 링크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eaeombin&logNo=150001176123 (음악 이력)
http://vimeo.com/ainslie (작품 보기)
http://cargocollective.com/ainsliehenderson (홈페이지)
http://www.wearejames.com/blog/ (록 그룹 제임스와 나눈 대화)
http://www.ainsliemusic.com/index2.htm (과거 음악 듣기)

[서채홍의 디자인커뮤니케이션 28] 기능성과 미학, 그리고 유머를 함께 담는 제품 디자인

1. 제품 디자인에서 기능성·미학·유머가 공존할 수 있을까?

이스라엘에 있는 디자인 스튜디오 벨렉 디자인(Peleg Design)은 일상생활에서 쓰는 작고 소박한 제품을 주로 만든다. 수저통, 파리채, 물뿌리개, 달걀노른자 분리기, 북엔드, 메모지와 스티커 등등. 소소한 물건에 대한 벨렉 디자인의 애정은 남다르다. 제품 본연의 기능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디자인의 미학적 완성도 또한 매우 높다. 거기에 유머까지 곁들인다. 흔치 않은 디자인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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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에서 노른자만 골라내는 ‘YOLKFISH’라는 제품을 보자. 달걀을 깨 그릇에 담고, 물고기 주둥이를 노른자에 대고 배를 눌렀다 놓으면 노른자를 삼키고 다시 배를 누르면 뱉어낸다. 놀랍도록 간편하고 실용적인 주방도구다. 작은 주황색 붕어에게 노른자 골라내는 일을 시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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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Y SWORD’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을 가진 파리채는 또 어떤가? 비장한 각오로 자세를 고쳐 잡고 파리를 잡게 만드는 검 모양의 파리채. 귀찮은 파리·모기와 한바탕 격전을 치러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디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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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MAKER’라는 구름 모양 물뿌리개는 생수병 주둥이에 끼워 쓴다. 구름이 식물에 비를 뿌린다. 작은 화초을 키우는 사무실에서 쓰기 좋은 간편하고 위트 있는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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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저통, 칫솔통으로 쓰는 ‘JUMBO’는 제품의 기능성이 특히 돋보인다. 설거지, 칫솔질을 하고서 수저나 칫솔을 바로 꽂아 두면 통 안에 물이 조금씩 고이기 마련. 곰팡이나 세균이 염려된다. 코끼리 모양으로 통을 만들고 코에 작은 구멍을 내 물이 고이지 않고 바로 빠지게 했다.

2. 눈속임의 마술이 디자인과 만난다면?

벨렉 디자인의 가장 유명한 제품 가운데 하나인 ‘Wine Bottle Holder’는 눈을 의심하게 한다. 쇠사슬에 묶인 와인 병이 공중에 떠 있다. 답은 재료의 특징과 시각적 속임수에 있다. 이어진 쇠사슬 모양일 뿐 허물어지지 않는 견고한 한 개의 쇠붙이다. 무게 중심을 잘 배분해 병을 꽂아 둘 수 있도록 했다. 쇠사슬과 밧줄 두 가지 버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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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석은 눈속임하기 좋은 재료다. 
– 메모지와 펜이 늘 같이 있도록 만든 ‘ESKIMEMO’ : 에스키모가 얼음낚시 하는 모습. 낚싯대 끝에 자석이 있어 펜이 대롱대롱 매달린다. 얼음판 속에 메모지가 들었다. 
– 사람 모양 열쇠 걸이 ‘KEY PETE’ : 벽을 타고 오르는 듯한 모습의 사람 손에 열쇠 30여 개를 매달아 둘 수 있다. 강력한 자석의 힘.
– 북엔드 ‘ARROW’ : 책상 위나 선반에 책을 쓰러지지 않게 받치는 공중에 뜬 화살표. 역시 강력한 자석의 힘.

인쇄물로도 눈속임이 가능하다.
– ‘GREETING STICKERS’ : 축하 메시지를 쓴 다음 선물 포장에 붙이면 구멍 난 포장에 글씨를 쓴 것처럼 보이는 인쇄 스티커.
– ‘BOOX STORE’ : 견고한 종이상자에 책꽂이에 꽂힌 책 모습을 인쇄했다. 상자 안에 물건을 담아 진짜 책 옆에 받치면 근사한 책꽂이가 된다.

3. 디자인의 관점이 곧 스타일이 된다

문구류나 작은 제품에 기발한 아이디어를 넣어 예쁘게 디자인한 제품은 어디서든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지만, ‘기능성·미학·유머’가 혼연일체가 된 디자인은 드물다. 우리의 일상과 늘 함께하는, 작지만 꼭 필요한 물건에 대한 애정과 그 물건이 때때로 우리에게 재밌는 말을 걸 수 있다는 걸 벨렉 디자인은 보여 준다. 디자인에 대한 이런 생각이 기능성·미학·유머를 낳고 그것의 결과가 곧 한 디자인 스튜디오의 스타일(양식)이 되는 게 아니겠는가?

서채홍

YOLKFISH 동영상 보기: http://www.youtube.com/watch?v=mRUDZhvpNzU
참조와 그림 출처: http://www.peleg-design.com

[서채홍의 디자인커뮤니케이션 27] “생일 파티에 기부하세요” – 기부하는 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인터랙티브 디자인 사례

미국에 ‘Birthday Wishes’라는 자원봉사단체가 있습니다. 노숙자 쉼터에 있는 어린이들에게 생일 파티를 열어주는 일을 합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대부분 생일을 기념하지 못합니다. 함께 있는 부모(주로 엄마)가 축하 케이크나 선물을 마련할 힘이 없다 보니 생일이 돌아와도 아이에게 일부러 알려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노숙자 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이들이 뜻을 모아 2002년에 ‘Birthday Wishes’를 설립했습니다. 지역의 노숙자 쉼터 한 곳에서 시작해 지금은 매사추세츠, 로드아일랜드와 롱아일랜드, 뉴욕에 있는 185개 이상의 노숙자 쉼터에 Birthday Wishes 프로그램을 정착시켰다고 합니다.

Birthday Wishes는 자원봉사와 기부로 운영합니다. 이 단체 홈페이지엔 ‘생일 파티 기부’를 적은 금액으로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한 매력적인 인터랙티브 페이지가 있습니다. 홈페이지 아래쪽에 ‘BUILD-A-BIRTHDAY’라 쓰인 메뉴로 들어가 볼까요?

1. 기부하는 사람의 미션 정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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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케이크에 촛불이 밝혀져 있고 소녀가 수줍게 웃는 영상이 보입니다. 화면 위로 삐뚤빼뚤한 손글씨 체로 문장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할 일(mission)은 단순합니다.
집 없는 아이들에게 생일 파티를 열어주는 겁니다.
왜냐하면, 모든 아이는 생일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생일 파티는요? 그건 당신에게 달렸답니다.

이 단체가 하는 일과 기부자가 이 페이지 내에서 수행해야 하는 임무가 일치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왜 기부해야 하는지를 감성적인 화면으로 전달합니다.

2. 기부 범위 정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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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단계에서 기부할 물품을 선택합니다. 정지된 화면입니다. 테이블에 소녀가 앉아 있고 생일 파티에 필요한 물품이 귀여운 드로잉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풍선 2달러, 케이크 11달러, 양초 1달러, 고깔모자 2달러, 접시와 포크 3달러 등 물품마다 값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기부를 원하는 만큼 고릅니다. 물품을 클릭하면 ‘뿅’ 터지면서 실물 사진이 나타납니다. 물품을 선택할 때마다 아래에 액수가 더해져 표시됩니다. 파티 물품 모두를 선택하면 100달러입니다. 이 단계에선 기부할 물품과 액수를 정하는 것뿐 아니라, 내가 기부하는 생일 파티가 어떤 풍경일지 미리 알 수 있습니다.

3. 기부 퍼뜨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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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품을 고르고 기부 버튼을 누르면 처음 나왔던 영상이 다시 나타납니다. 고맙다는 문장이 뜨고 나서 소녀가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끕니다. 소녀가 생글생글 웃는 화면 위로 기부자의 친구를 초대하길 권하는 메시지가 나옵니다. 기부자의 트위터, 페이스북, 핀터레스트에 이 페이지를 소개할 수 있습니다. 선택하지 않더라도 마지막 단계로 넘어갑니다. 이제 일반적인 기부 형식의 문서에 개인정보를 입력하면 모든 과정이 끝납니다.

어떤가요? 쉽고 간단합니다. 과정을 간추리면 이렇습니다. 이 기부의 목적과 의미를 일깨워줍니다. -> 기부 범위를 눈으로 보며 직접 선택합니다. -> 적은 돈으로도 기부할 수 있습니다. ->  부담 없이 친구에게 동참을 권할 수 있습니다. -> 중간에라도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첫 화면으로 옮겨 가 다시 선택할 수 있습니다.

기부하는 사람의 마음을 잘 배려해 설계한 좋은 디자인 사례입니다.

서채홍

참조와 그림 출처: www.birthdaywishes.org

BUILD-A-BIRTHDAY 페이지 바로가기 

[서채홍의 디자인커뮤니케이션 26] 효과적인 그래프·차트 작성법

1. 누구나 그래프와 차트를 만들어야 하는 시대

보고서나 프레젠테이션 자료에 통계치를 이용한 그래프를 누구나 한 번쯤은 써본 일이 있을 것이다. 연도별·월별 매출 변화, 시장 점유율의 변화 등을 알기 쉽게 전달하기에 그래프만 한 것이 없다.

– 이 내용엔 막대그래프를 써야 하나, 파이그래프를 써야 하나, 아니면 따른 형태가 있나?
– 데이터와 통계를 왜곡하지 않고 어떻게 정확히 표현할까?
– 무엇을 어떻게 강조할까?
– 글자는 어디에 어떻게 집어넣어야 할까?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하면 이와 같은 실질적 난관에 부딪힌다. 훈련된 디자이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데이터를 어떻게 읽고 해석할지, 적합한 그래프와 차트 형식은 무엇인지, 그리고 과장·왜곡 없이 정확히 표현하는 법을 배울 기회는 흔치 않다.

2. 요점만 간단히, 정확하게, 간결하게!

“월스트리트저널 인포그래픽 가이드 – 데이터, 사실, 수치를 표현할 때 지켜야 할 기본 원칙”은 이런 궁금증에 대한 ABC를 알려주는 입문서다. 이 책의 지은이 도나 M. 웡은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 언론사에서 20년 이상 경험을 쌓은 인포그래픽 전문가다. 그래프·차트를 만드는 기본 원칙을 사례를 들어 알기 쉽게 설명한다.

예를 들면 파이 그래프를 만들 때 흔한 실수.
– 파이 그래프를 삼차원으로 표현하면 면적에 왜곡이 일어나 상대적인 비율이 달라진다.
– 파이1(100%), 파이2(200%), 파이3(400%)으로 세 원의 크기를 비교할 때 반지름을 1 / 2 / 4로 늘리면 실제 원의 비율이 1:4:16이 되어버린다. 반지름을 각각 1 / 1.414 / 2로 계산해야 한다.

이렇듯 데이터의 왜곡 없이 정확히 표현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멋지고 아름답게 만드는 법보다는 간결하게 핵심을 잘 전달하기 위한 기술과 표현법을 교과서적으로 말하고 있다.

“핵심은 되도록 적은 수의 그래픽 요소만 사용하여 시각적인 깔끔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복잡도는 새로운 정보가 있을 때만 추가되어야 한다. 차트의 형식을 결정하기에 앞서서 요점을 명확하고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도록 정보를 선별하라. 각 차트에는 핵심 메시지 전달에 필요한 만큼의 정보만 담아야 한다. 단 하나라도 필요 이상으로 더하지 말 것. 간결하고, 간결하며, 간결하게 하라!(141쪽)”

wallstreet_infoguide

서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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