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의 미래 21] 이코노미스트 특집 2 – 왜 이코노미스트는 기자들의 실명 대신 익명기사를 싣는가?

0.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9월 2일 창간 170주년 특집으로 독자들이 이코노미스트에 대해 자주 물어보는 질문 5가지를 선정해서 답변을 했다. 에이케이스는 이를 순차적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오늘은 첫번째로 ‘왜 이코노미스트는 기자들의 실명 대신 익명기사를 싣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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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부분의 신문과 잡지들은 누가 이 기사를 썼는지 알리기 위하여 바이라인 (주: 기사 마지막 부분에 표기되는 기자 이름) 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코노미스트는 그렇지 않다. 바이라인이 없고, 기자들은 익명으로 남아있다. 왜 그럴까?

2. 이에 대한 답 중 하나는 이코노미스트가 다른 언론사들이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역사적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은 이코노미스트를 제외한 모든 곳에서 바이라인 인플레이션이 만연해있다. (어떤 신문사들은 일반적인 기사인데도 기자의 사진과 함께 바이라인을 사용한다.) 전통적으로, 많은 언론사들은 바이라인이 없거나 혹은 필명으로 기사를 냈다. 필자들에게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고 초창기 신문사의 편집국이 실제보다 더 큰 조직이라는 인상을 전달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이코노미스트 초기에는 창립자인 제임스 윌슨 (James Wilson) 이 거의 모든 기사를 혼자 다 썼다. (그러나 그는 ‘우리는’ 이라는 복수의 표현을 사용했다.)

3. 그러나 한명인데도 여럿인 것 같은 인상을 주려고 시작한 익명제는 이코노미스트에서 정반대의 기능으로 작용했다. 익명제는 다수의 필자들이 단합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했다. 편집국 전원에게 공개된 상태에서 진행되는 주간 미팅에서는 토론과 논쟁이 벌어진다. 기자들은 종종 기사를 함께 쓴다. 어떤 기사들은 편집국에 의해 매우 많이 교정된다. 따라서 이코노미스트에 실린 기사들은 한 명의 필자가 쓴 글이 아니라 이코노미스트라는 ‘한 집단’의 생각이 담긴 글이다.

4. 그러나 익명제를 사용하는 핵심 이유는 글을 쓴 사람보다 글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1938년~1956년 이코노미스트 편집국에서 근무한 조프리 크로우더 (Geoffrey Crowther) 는 익명제에 대하여 이렇게 평했다. “익명제는 편집자에게 자신보다 훨씬 더 위대한 무언가의 ‘주인 노릇’ 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이 되도록 한다. 익명제는 이코노미스트에게 사상과 원칙에 대한 놀라운 모멘텀을 선사했다.” 이코노미스트가 바이라인을 사용하지 않는 규칙에 대한 예외라면, 주간호의 특집 리포트에 한해서다. 특집 리포트는 특정한 한가지 주제에 대한 기사들의 모음인데, 여기에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첫번째 기사에서 필자의 이름이 명시된다. 전통적으로 은퇴하는 편집자들은 기명 고별사를 쓴다. 그렇지 않은 나머지 경우에는 항상 익명이다.

5. 그러나 이코노미스트 웹사이트에는 다른 규칙이 적용된다. 몇년 전 이코노미스트는 독자들의 혼선을 줄이고자, 필자가 여럿인 이코노미스트 자체 블로그에서는 이니셜로 바이라인을 사용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미국 정치를 다루는 Democracy in America 같은 블로그 말이다.) 기자들은 이코노미스트 자체 블로그에서 서로 논쟁을 할 수 있고 또 한다. 그래서 독자들이 필자들을 구분할 수 있도록 기자들의 이니셜을 사용한다. 이 방법은 단점도 있지만 (예를 들어, 이코노미스트에는 J.P. 라는 이니셜을 가진 필자가 4명이나 있다.) 완전한 익명제와 완전한 실명제 사이에서 최선의 타협안이다. 그리고 이코노미스트의 오디오/비디오 기사에는 기자들의 실명이 나간다. 또 이코노미스트 기자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트위터를 한다. 인터넷 때문에 익명제 정책이 빛을 다소 바래가고 있긴 하지만, 바이라인이 없는 기사는 이코노미스트의 정체성이자 이코노미스트 브랜드의 핵심적인 부분으로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박소령

출처: 이코노미스트, 링크
이미지 출처: Relativecreativity.com, 링크

[유민영의 위기전략 28] 호텔신라, ‘글로벌 럭셔리 호텔’에 대한 위험한 집착 – 두 번 실수가 가능한 시스템 위의 오너십

1. 호텔신라는 2011년 뷔페식당 ‘파크뷰’에 한복 입은 손님을 받지 않는다는 황당한 규정을 실천하다가 심각한 논란을 빚었다. ‘손님’에 대한 철학 보다 ‘관리’에 대한 규율이 더 우선한 결과였다.

2. 호텔신라에게는 ‘손님’과 ‘이익’의 조화라는 일반적 목표가 아닌 다른 목표가 있었다. 오너의 경영성과와 가치창출을 위한 신라호텔 그 자체가 중요했던 것이다. 신라호텔은 세계 1류의 상징이어야 했던 것이다. 그것이 ’손님‘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한복‘이 불편함의 상징으로 이해되는 본질적 이유였다.

3.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사과를 했고 한 축으로는 경영 디스플레이의 측면에서, 한 축으로는 오너 자존심의 측면에서 큰 상처를 입었다.

4. 이것은 물론 경영상의 실적 변경을 가져오는 사안은 아니지만, 특별한 성과를 보이지 않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의 3세 경쟁구도에서 차별적 청사진을 제시해 온 이부진 사장에게는 오점으로 남았다.

5. 물론 한 번의 실수로 남을 수도 있었다.

6. 호텔신라는 2012년 탑클라우드 운영 등 외식사업과 고급 베이커리 브랜드 ‘아티제’ 사업을 접었다. 경영상의 부실과 대기업 골목상권 논란에 따른 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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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신라는 지난 6개월의 ‘글로벌 럭셔리 호텔’로의 대전환을 위한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8월1일 재개관을 했다. 언론에 따르면 이 모든 작업은 이부진 사장이 직접 진두지휘했다고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객실, 레스토랑, 연회장, 야외수영장 등의 최고급화가 이루어졌다. 귀빈층 휴식공간인 ‘이그제큐티브 라운지’가 최고급화되었고 피트니스센터는 미국의 최신운동설계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수영장은 야외 온수풀이 갖춰지는 등 훨씬 더 귀족화되었다. 9년 만에 한식당 ‘라연’도 문을 열었다.

그런데 재개관하자마자 어이없는 두 개의 사건이 터졌다. 지난 6일 호텔 23층 이그제큐티브 라운지 천정에서 빗물이 새는 일이 생겼다. 이어 23일에는 한식당 라연에서 ‘미취학 아동 입장 불가’를 규칙으로 운영하고 홈페이지에 게재했다가 구설수에 오르게 된 것이다. ‘라연’과 양식당 ‘콘티넨탈’ 이 규정을 적용했다고 한다.
이부진 사장은 천정 누수 사태로 인해 경영자로서 관리의 책임에 대한 의문을 지게 되었고, 한식당 출입 제한 논란으로 인해 호텔 경영의 철학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되었다. 이 사장의 야심찬 계획은 출발부터 구겨지고 말았다.

1. 왜 지금 호텔일까? 
이부진 사장의 전문 능력과 경영 성과는 면세유통 부분에서 검증되었다. 이 사장이 2001년 호텔신라에 입사한 이래 지난 10년간 면세점 사업은 괄목할만한 규모의 확대를 보였고 특출한 성과를 증명했다. 반면 호텔사업은 제자리걸음이었다. 2011년에는 한복사건도 겪었다. 2012년에는 외식사업과 제빵사업은 접었다. 이 사장에게는 경영의 성과라는 측면과 세계 최고의 호텔이라는 명성 두 가지가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건희 회장은 1993년 프랑크푸르트선언 이후 ‘세계 최고’를 지향했고 ‘반도체’와 ‘핸드폰’에서 그것을 실현했다. 삼성전자는 삼성의 정수이고 상징이다.
이부진 사장에게는 호텔신라가 이건희 회장의 세계1류였고, 삼성전자였다.

2. 왜 자꾸 이상한 규칙이 등장하는가?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사장에게 호텔신라는 ‘경영 성과’ 이상이다. 매출의 확장과 동시에 글로벌 세계 최고를 상징하는 랜드마크여야 했다. 그래서 규칙이 등장하는 것이다. 세계 최고라는 특별한 기준이 규칙을 만든다. 오너의 각별한 의지가 규정을 만드는 것이다. 당연히 일반 호텔과 다른 우선순위가 설정되고 그 목표에 충실한 룰이 등장한 것이다.
재개관 때 스피커로 등장한 최태영 서울호텔신라의 총지배인은 “홍콩 페닌슐라아와 뉴욕 포시즌스를 경쟁상대로 삼겠다”고 확인했다.
내부 식당에 이러한 규정을 둔 것은 미슐랭 가이드가 부여하는 최고등급 ‘별 세 개’를 얻기 위한 기준이었다는 보도가 있다. 이것이 아닐까. 호텔의 가치를 손님의 평가가 아니라 외부의 평가를 통해 얻고자 하는 시도. 그것이 별 세 개의 기준을 만들었을 것이다.
한식당 좌석수가 36석, 프렌치 레스토랑이 40석이고 100% 예약제로 운영되는 것도 이를 방증한다.

3. 여기서 ‘식당’과 ‘손님’은 무엇인가? 
그렇다. 여기서 주객이 전도된다. 호텔신라에서 ‘손님’은 액세서리의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세계 최고 호텔을 향한 부속품 같은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손님을 위해 식당이 존재한 것은 아니었다. 크게 이익이 나는 것도 아니었다. 한국의 세계 최고 호텔에 프렌치 레스토랑과 함께 최고급의 한식당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니 유동성을 부르는 ‘손님’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계획하고 통제된 그림이 이 호텔에는 절실했다.

4. 왜 실수는 반복되는가? 
경영자는 실수를 한다. 그렇다면 특별한 경영자의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는 두 번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다.
전문 경영인들은 대체로 두 번 실수의 기회를 갖지 못한다. 오너 경영인들은 두 번 실수의 기회를 갖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두 번, 세 번 실수를 가능하게 하는 본질적 이유일 수도 있겠다.
회사가 위기를 통해 배워가며 튼튼해진다는 것은 한 번의 실수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이고 두 번 실수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기가 꼭 나락으로 빠지는 요소만이 아니라 기회의 요소가 되는 이유다.
그런데 한복사건에 이은 동일한 범주의 내부기준에 의한 사건이 발생했다면 이것은 오너쉽의 위기로 보는 것이 맞다.
실제 경험을 통해 충분한 리허설을 거친 사안에 대해 동일한 실수가 반복되고 시스템은 필터링을 해내지 못하며 스탭들은 무디어져 있다면 그것은 타성이나 일시적 실수의 문제라기 보다는 더 근본적인 데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5. 호텔신라라는 조직은 잘 훈련되어 있는가? 
충분히 훈련되고 준비되지 않는 것도 발견되었다.
미취학 아동에 대한 내부 기준이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되어 있었고 예약을 위해 홈페이지를 찾은 예비 손님에게 발견되었다.
소비자가 문제제기 하기 전까지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고 문제제기하지 않았다.
운영상의 묘 혹은 실수로 돌릴 수 있었던 문제가 명백한 오류로 인식되는 사건이 되는 순간이다.

호텔신라는 소비자의 불만이 제기되자 미취학아동에 입장을 금지한 문구를 홈페이지에서 삭제했고 조치를 철회했다. 그러나 미취학아동 입장 제한이 도리어 고객 편의를 위한 것이었다는 주장을 멈추지는 않았다.

***

한복사건과 달리 이 사건과 관련해 이부진 사장은 등장하고 있지 않다.
사건은 크게 확대되지 않고 있고 이 사장이 직접 사과의 주체가 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 듯 보인다.

그러나 오히려 이부진 사장이 더 큰 경영의 가치를 이해하는 사건이 되기를 바래본다.
주객이 전도되는 경영의 가치와 이유는 이런 위험을 항상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근래 방영되는 드라마 ‘황금의 제국’에서 삼성가의 상속세 전쟁을 연상하는 기자도 있었다. 누군가를 금지할 수 있다는 것은 발상은 소비자에 대한 착상이 아니다. 권력과 통제의 언어에 가깝다. 그들만의 제국에서 벌어지는 일로 세계 최고의 사업이 인식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노력이 필요하다. 경영의 철학이 필요하다. 세계 최고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 호텔신라의 한복사건 때 써 놓았던 글이다. 같이 보면 ‘실수의 재연’을 더 명확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유민영의 커뮤니케이션 이야기

유민영

[첫문장, 끝문장]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2013년작)

* 3년 만에 돌아온 무라카미 하루키. 인기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 에서도 8월 21일, 28일에 걸쳐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지금까지 한국 언론과 딱 1번 인터뷰를 한 바 있다. 2007년 1월호 GQ 에 실린 인터뷰다. 그 중 일부를 발췌하여, 첫문장 끝문장과 함께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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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럼 대체 그 많은 돈으로는 무얼 하시나요? 
A 자유. 자유를 사고, 내 시간을 사요. 그게 가장 비싼 거죠. 인세 덕에 돈을 벌 필요는 없게 됐으니 자유를 얻게 됐고, 그래서 글 쓰는 것만 할 수 있게 됐죠. 내겐 자유가 가장 중요해요. 

Q 당신이 걸어가고 있는 그 길의 종점은 어디인가요. 
A 제 목표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같은 책을 쓰는 거예요. 
Q 어떤 면을 말씀하시는 거죠? 복잡하고 다양한 캐릭터와 구성?
A 물론.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안에는 전 우주가 담겨 있어요. 너무 다양한 사실들과 시스템, 세계, 스토리 가 그 안에 다 들어가 있어요. 몇 번을 읽어도 또 배울 점이 있죠. 

Q 좋아요. 그럼 예쁜 여자가 찾아 와서‘당신 같은 소설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해주실 건가요? 
A 글쎄요, 전 좋은 소설가가 되고 안 되고는 능력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글쓰기에 대한 본능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저는 단 한번도 제게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다만 글을 쓰게 만드는 본능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본능이 있 다면 써야만 하고 쓰게끔 되어 있는 거죠. 운명적으로.  

– 첫문장: 대학교 2학년 7월부터 다음 해 1월에 걸쳐 다자키 쓰쿠루는 거의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사이 스무살 생일을 맞이했지만 그 기념일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런 나날 속에서 그는 스스로 생명을 끊는 것이 무엇보다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지 못했는지, 지금도 그는 그 이유를 잘 모른다. 그때라면 삶과 죽음을 가르는 문지방을 넘어서는 일따위 날달걀 하나 들이켜는 것보다 간단했는데.

– 끝문장: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눈을 감고 잠들었다. 의식의 꼬리에 매달린 빛이 멀어져가는 마지막 특급 열차처럼 서서히 속도를 올리며 작아지더니 밤 가운데로 빠져들어 사라졌다. 그리고 자작나무 사이를 지나는 바람 소리만 남았다.

출처: 민음사, 양억관 역, 2013년 1판 4쇄

[저널리즘의 미래 15] 뉴욕타임즈의 디지털스토리텔링 실험 7년 – 수익모델과 저널리즘 두 마리 토끼를 잡다

1. 뉴욕타임즈는 지난 8월 15일 디지털 플랫폼 부편집장을 구인한다는 공고를 냈다. 뉴욕타임즈는 이상적인 후보는 저널리스트이자, 신기술에 열광하는자(테크노필, technophile), 창의적인 사람이자 에반젤리스트(evangelist, IT 신기술을 전파하고 확산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다. 더 이상 글만 쓰는 기자를 뽑지 않는다. 새로운 디지털스토리텔링은 저널리스트이자 테크노필인 이들에게서 나온다.

2. 올 7월 뉴욕타임즈 편집장 질 에이브럼슨은 새로운 몰입형 디지털 매거진을 런칭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노우폴(Snow Fall)’과 같은 인터랙티브 기사의 성공을 유료화 모델로까지 확장하기 위함이다. 뉴스 제공을 디지털 쪽으로 확장하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겠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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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스노우폴’은 올 4월 15일 발표된 2013 퓰리처상에서 기획보도(Feature Writing) 상을 받았다. 다른 수상작들이 몇 개월에 걸친 취재와 뛰어난 기획력으로 수상했다면, ‘스노우폴’은 획기적인 인터랙티브 저널리즘을 보여주며 디지털스토리텔링의 정점을 찍었다. 1만 7천자의 긴 스토리를 멀티미디어 비디오와 모션그래픽 66개를 배치해 워싱턴주 캐스케이드 산맥을 덮친 눈사태에 대한 내용을 독자가 생생하게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사진, 지도, 3D 그래픽, 비디오 등 동원가능한 모든 멀티미디어 콘텐츠가 기사를 입체적으로 만들었고, 인터랙티브 뉴스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깔끔한 레이아웃에 담아냈다. 질 에이브럼슨 편집장은 ‘스노우폴’을 공개하며 뉴욕타임즈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뉴욕타임즈 온라인 스토리텔링 진화의 멋진 순간”이라고 썼다. 또한 “Snowfall은 환상적인 그래픽과 비디오, 모든 종류의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이야기를 상징하는 동사가 되었다”고 말했다.

4. ‘스노우폴’을 제작한 뉴욕타임즈 인터랙티브 뉴스 팀은 2007년에 만들어져 디지털스토리텔링과 웹사이트 개발을 결합한 실험을 계속해오고 있다. 기자, 프로듀서, 그래픽 디자이너, 데이터 개발자, 프로그래머 등으로 구성된 18명이 팀원이며 내년까지 2~3명 더 충원 예정이다. 뉴욕타임즈 인터랙티브 뉴스 팀은 2008년 1월 당시 미국 민주당 버락 오바마 후보와 힐러리 클린턴 후보 사이의 LA 경합 과정을 라이브 블로깅으로 보여줬다. 실시간 방송으로 생중계되는 동안 글과 사진으로 현장감을 전달했고, 경선지역 지도와 함께 현장의 목소리를 음성으로 담아내기도 했다. 2010년에는 전 세계 시민이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수집해 3D 가상 지구 위에 입체적으로 담아내는 서비스를 기획해 크라우드 소싱을 구현하기도 했다. 2011년 허리케인 아이린이 다가올 때는 최근 48시간 사이의 풍속과 강우량 그래프를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전기공급이 끊긴 가구 수, 기록 강수량, 예보 강수량을 지역별로 볼 수 있는 인터랙티브 데이터 지도를 만들어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돕기도 했다. 이렇게 다양한 멀티미디어 실험이 축적되어 ‘스노우폴’을 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스노우폴’ 이후에도 ‘에스티마’님의 포스팅에 나온 것처럼 블룸버그 뉴욕시장 재임기간 동안 뉴욕의 변화를 담아낸 ‘Reshaping New York’ 기사의 3D 지도와 사진의 결합, 평생 5만회 이상 출전한 55세 경주마 기수의 이야기 ‘The Jockey’ 기사의 음성, 동영상, 반응형 웹 등의 디지털스토리텔링 실험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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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질 에이브럼슨 편집장은 이러한 인터랙티브 기사를 몰입형 디지털 매거진으로 만들어내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새 아이디어 태스크 포스로 소규모 뉴스룸 버전의 ‘아이디어 랩(The Idea Lab)’을 만들어 디지털스토리텔링 스타일을 연구하고, 이에 기반한 창의적인 광고도 개발한다. 아이디어 랩은 6월부터 새로운 인터랙티브 광고를 개발해 선보이고 있다. 프루덴셜 광고 캠페인은 독자들이 광고창에 생년월일을 입력하면 그날에 해당하는 뉴욕타임즈 1면을 보여준다. 소셜미디어에서 크게 입소문을 탔고, 브랜드 호감도 상승에 도움을 줬다. 세제 브랜드 위스크(Wisk)는 뉴욕타임즈의 인터랙티브 기사를 응용한 광고를 집행했다. 오리지널 기사는 피카소의 그림 위로 독자가 마우스를 움직여 긁어내면 그림 아래 쪽에 숨겨져 있던 그림이 드러나는 방식이었다. 위스크는 티셔츠 위에 마우스를 움직여 찌든 때가 얼마나 숨어 있는지를 드러내는 방식의 인터랙티브 광고를 집행했다. 아이디어 랩이 제안하는 디지털스토리텔링 기법의 광고가 ‘스노우폴’ 등의 성공으로 인해 광고주들에게 크게 어필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뉴욕타임즈의 온라인 구독자 수는 늘었지만 광고 수익이 11.2% 감소했기 때문에 뉴욕타임즈는 디지털스토리텔링을 저널리즘과 광고 수익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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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질 에이브럼슨 편집장의 말대로 사람들은 더 이상 뉴욕타임즈 온라인을 읽지 않고 시청한다. 인터랙티브 뉴스 팀은 7년의 실험을 거듭해 오며 디지털스토리텔링을 정립해가고 있다. 뉴욕타임즈의 새로운 디지털 몰입형 매거진이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 독자들의 뉴스 소비 행태를 어떻게 바꿀지 기대해 본다.

송혜원

* [저널리즘의 미래] 이전 글들을 보시려면: 링크

출처:
NYT Snowfall, 링크
NYT Reshaping New York, 링크
NYT The Jockey, 링크
에스티마의 블로그, 링크
paidContent, 링크, 링크 

[커뮤니케이션 스쿨 15] 죽음을 앞둔 인생의 마지막 치료에 대한 선택, 커뮤니케이션 아이디어로 접근하다

1. 오래 산다는 것이 더 이상 축복이 아닌 요즘이다. 6월 20일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0세이지만 건강수명은 70세에 불과하다고 한다. 즉, 인생의 말년 10년간은 이런저런 질병에 시달리다가 생을 마감한다는 뜻이다. 더 큰 문제는 인생의 마지막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기 위한 준비가 극히 부족하다는 것이다.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나 대화가 암묵적인 금기로 여겨지고 있는 분위기 때문인 듯 하다. 하지만 이로 인한 가족간의 불화와 고통, 불필요한 연명치료에 따른 금전적 손실과 기회비용 등 개인과 사회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급증하고 있다. ‘장수 리스크’ 라는 용어가 괜한 것이 아니다.

2.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았나 보다. 미국 퓨 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1990년 미국인 중 12% 만이 건강하게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인생 마지막 단계의 치료에 대한 선택 의사 (end-of-life care preference) 를 문서로 가지고 있다고 한다. 2005년에도 고작 29% 에 불과했다. 한 의사에 따르면, 폐암에 걸려 입원/퇴원을 반복하고 수년간 의사 20명을 만나온 한 환자는 아직까지도 자신의 죽음에 대한 준비와 선택의 우선순위를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The Conversation Project 나 PREPARE 와 같은, 나이가 많고 병에 걸린 환자들에 대하여 가족들과 친밀한 대화를 통해 마지막 단계의 치료에 대한 의사를 결정하도록 하는 캠페인이 주를 이루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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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하던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대학의 Dr. Lakin 은 병원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시도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그 실험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Dr. Lakin 의 실험 내용을 소개한다.

4. 실험의 골자는 ‘표준화된 질문’과 ‘의사에게 제공하는 인센티브’에 있다.

이 병원의 리서치 팀은 환자에 대한 기존의 건강기록 전자문서에 환자의 선택에 대해 질문하는 표준화된 문서를 포함시켰다. 환자에게 몇가지 질문만 확인하면 된다.
– 환자가 어느정도의 치료를 원하는지, 혹은 원하지 않는지 의사표현을 했는가?
– 환자의 의사표현은 어떤 곳에 기록되어 있는가?: 자신의 유언장인가, 변호사에게 전달했는가, 아니면 구두로 말했는가?
– 환자가 심폐소생술이나 튜브삽입을 원하지 않았는가?
– 환자가 튜브로 음식을 섭취하는 것은 동의했지만 산소호흡기는 원하지 않았는가?
– 환자는 모든 종류의 치료를 다 받기를 원했는가?
– 환자에게 의사결정을 대신하도록 지정한 사람이 있는가? 그 사람의 이름, 휴대폰 번호는 무엇인가? 그 사람은 어떤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가?

그리고 표준화된 문서에 따른 질문에 대해, 1년의 3/4 기간동안 퇴원한 환자의 75% 에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받으면, 실험에 참가한 레지던트 의사들 모두는 400불을 받게 된다. 75%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돈은 없다. 레지던트들의 1년 연봉이 4만-5만불인 것을 고려할 때 400불의 보너스는 대단히 큰 돈은 아니지만 아주 작은 돈도 아니다. 또한 리서치 팀 연구자들은 실험에 참가한 의사들에게 환자들의 응답율을 바 그래프로 만들어서 이메일로 발송했다. 목표치에 제대로 가고 있는지 아니면 다 같이 받을 수 있는 보너스를 놓치게 될 우려는 없는지를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Dr. Lakin 은 이에 대해 ‘마케팅 101’ 이라고 말했다.

5. 2011년 여름-2012년 여름 1년동안 병원을 거쳐간 성인 환자들 중 절반 이상인 1,500명을 대상으로 실험이 진행되었다. 첫번째 달이었던 7월에 환자 응답율은 22% 에 불과했다. 표준화된 문서가 도입되기 전후와 큰 차이가 없는 수치였다. 따라서 ‘표준화된 문서 그 자체로는 충분치 않다’ 라는 것을 리서치 팀은 깨달았다. 그러나 10월이 되자 의사들 대상의 인센티브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작동하자 응답율은 90% 이상으로 올라갔고 그 이후로도 떨어지지 않았다. 반대로 인센티브 프로그램이 도입되지 않은 대조군 레지던트 의사들의 경우 12% 미만의 응답율을 보였다.

6. 이 실험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진 않는다. 레지던트보다 수입이 더 많은 전문의들을 움직이게 하려면 얼마의 인센티브 금액이 필요한지, 그리고 문서에 응답한 그대로 환자가 말기 치료 선택을 받을 수 있게 될지 확신할 수도 없다. 그러나 병원은 ‘컨베이어 벨트’ 같은 시스템이 있다. ‘원하지 않는다’ 라고 말하지 않는한 병원은 규정된 그대로의 시스템을 환자에게 적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7. “가족간의 대화로 이 문제가 해결된다면 가장 좋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정에게 이런 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부모가 어떤 인생 말년 치료의 선택을 바라는지 이야기를 꺼내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아무도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것일수도 있다. 그러나 중환자 치료실에 들어가는 하루 비용을 고려해 본다면, 의사의 질문을 통해서 미리 확인해 두는 것이 현명한 판단일 것이다.” 뉴욕타임즈 Paula Span 기자의 결론이다.

8. 이런 가운데, 7월 31일 우리나라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무의미한 연명 의료 결정에 관한 권고안’을 심의해 최종 확정했다. 더는 나을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자신이나 가족의 결정으로 존엄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길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웰다잉 (Well-dying) 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고령화 시대에서 개인의 의사에 일임하는 것보다 Dr. Lakin 의 실험처럼 커뮤니케이션 아이디어로 조직과 사회가 함께 준비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박소령

* [커뮤니케이션 스쿨]에 대한 이전 글들을 읽으시려면: 링크 

출처: 뉴욕타임스, 링크
이미지 출처: The California Report, 링크

[유민영의 위기전략 27] 삼성의 미래가 궁금하다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시대다.
남이 먼저 변하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변화는 없다.
나 자신부터 양보하고 나부터 변해야 한다.“
– 1993년 6월7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삼성 신경영’을 선언하며

1.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자신의 이름으로 낸 유일한 책이다. 동아일보에 연재하던 에세이를 묶어냈다. 개인과 기업에 대한 호오를 떠나 경영자들이 읽어볼 만한 대목들이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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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안쪽에는 아래와 같이 적혀 있다.

이건희
1942년 경남 의령에서 출생
일본 와세대 대학에서 경제학 전공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에서 경영학 전공
1968년 중앙일보와 동양방송 이사로 취임
1978년 삼성그룹 부회장으로 취임
1987년 삼성그룹 회장으로 취임
1996년 IOC 위원으로 선임

우리 나이로 올해 칠십 둘이다.

2.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라고 말한 것도 1993년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실제로 회사의 모든 것을 다 바꾸었다. 그는 메시지의 위력을 아는 오너였다. One Voice가 얼마나 큰 위력이 되는지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또 전략은 어떻게 관철되는 지 정확하게 아는 오너였다.

“만약 전략이 문서화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전략이 없다는 것이다.”
– 조셉 나폴리탄, <정치컨설턴트의 충고>

“용어를 통일하고, 특유의 용어를 만들고, 용어의 질을 높이는 것, 이것이 조직의 효율을 높이고 조직을 한 방향으로 향하게 만든다.”
– 이건희,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 1997, 동아일보사

3. 그러나 이 회장의 설화도 만만치는 않았다.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

1995년 4월, 장쩌민 주석 면담을 위해 중국을 방문했을 때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정치권의 엄청난 반발을 불러왔다. 본인은 해명했지만 파장은 컸다. 국민의 여론은 나쁘지 않았다.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 거짓말 없는 세상이 돼야한다.”

2010년 2월 고 호암 이병철 회장의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서 ‘호암의 경영철학 중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 것이다. 비자금과 X파일로 홍역을 치른 사람이 할 말이 아니었다. 보통 사람들의 억장은 무너졌다.

“(당시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흡족하기보다는 낙제는 아닌 것 같다.”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부정, 긍정을 떠나 경제학 책에도 없는 내용”

2011년 3월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서 말했다. 해명했지만 고약한 대통령의 미움을 샀다. 스스로 무슨 말을 해도 되는 위치가 되었다.

4. 8월 20일 한국경제는 이건희 회장의 와병설을 보도했다. 삼성전자의 커뮤니케이션 팀 이인용 사장은 언론에 강력한 브레이크를 걸었다. 전사적으로 대응한 덕에 와병 보도는 약화되었고 해명이 강조되었다. 와병설을 대하는 삼성의 커뮤니케이션과 태도는 일사불란하고 완강하다.

5. 그러나 궁금해졌다. 평소 지병이 있고, 겨울에는 따뜻한 곳으로 움직이며, 또 노인의 폐렴은 작은 병은 아니고, 1주일 입원까지 해야 하는 정도라면, 또 수십억을 들여 내부행사로 신경영 20주년 기념 전시회를 진행했던 것을 보면 신경영 20주년 만찬을 연기한 이유가 전력난 때문이었다는 것도 설득력이 부족했고, 그렇다면 보도할 가치가 충분히 있었던 것 아닐까. 혹시 업무에 일부 장애가 생길 정도로 이건희 회장이 많이 아프다면 삼성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하는 문제를 거론해 보는 것은 과도한 것일까.

6. 삼성의 미래는 작은 문제는 아닐 것이다. 연착륙 할지? 경착륙 할지 알수 없는 일이다. 부자 3대 못 간다는 어른들의 말, 소니 등 경쟁사들의 조건, 애플과의 대립, 오너 체제와 시스템 경영의 관계,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검증되지 않은 3세 오너들의 능력, 3세들의 내부 경쟁,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 아직 끝나지 않은 금융권 자산의 배분 문제, 포화상태에 이른 휴대폰과 포스트 반도체 등은 다음 기회에 추적해 봐야겠다.

7. 마치 위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버려서 더 나아가는 것은 접었다. 과하게 부정하고 언론이 쓰지 못하는 것에 대한 반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아프다는데, 또 사람이 아프지 않다는데 더 나아가는 것이 꼭 적절한 것도 아닌 것 같아서다.

유민영

[첫문장, 끝문장]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2013년작)

* 이름 석자만으로 브랜드가 되는 작가 ‘김영하’가 돌아왔다. 17번째 책, <살인자의 기억법> 으로. 140페이지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소설인지라, 한시간이면 술술 다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르면 ‘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읽어봐야 되겠다’ 라는 생각이 드는 분도 있으실 것이다. 뜨거운 여름이 서서히 끝을 고하는 이번 주말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보시면 좋겠다. 조선일보 8/14자 에 실린 김영하의 인터뷰 중 일부도 함께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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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전부터 제정신 아닌 사람들이 좋았다. 그런 발언자가 등장함으로써 새로운 공간이 열린다.”

“소설을 읽고나면 마음이 몇 cm 는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과는 달라진 나. 궁극적으로 소설은 감수성의 계발이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 소설이다.”

“나는 아이가 없지 않나. 조카도, 심지어 처조카도 없다. 가까운 친척도 없다. 내가 죽으면 아무 흔적도 남지 않는 거지. 그래서 내 생은 이 소설들과 함께 끝나는구나 생각한다. 더 열심히, 더 잘써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 첫문장: 내가 마지막으로 사람을 죽인 것은 벌써 25년전, 아니 26년전인가, 하여튼 그쯤의 일이다. 그때까지 나를 추동한 힘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살인의 충동, 변태성욕 따위가 아니었다. 아쉬움이었다. 더 완벽한 쾌감이 가능하리라는 희망. 희생자를 묻을 때마다 나는 되내곤 했다.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거야. 내가 살인을 머문 것은 바로 그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 끝문장: 미지근한 물속을 둥둥 부유하고 있다. 고요하고 안온하다. 내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공空 속으로 미풍이 불어온다. 나는 거기에서 한없이 헤엄을 친다. 아무리 헤엄을 쳐도 이곳을 벗어날 수가 없다. 소리도 진동도 없는 이 세계가 점점 작아진다. 한없이 작아진다. 그리하여 하나의 점이 된다. 우주의 먼지가 된다. 아니, 그것조차 사라진다.

출처: 문학동네, 2013년 초판

[휴먼 리스크 1]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 그는 누구인가? (1)

* 주: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49세)의 워싱턴 포스트 깜짝 인수발표는 지난 한주 내내 대단한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프 베조스는 어떤 사람인지 잘 알려지지 않은 상당히 비밀스러운 인물입니다. 그는 사생활을 매우 중시하며 언론과의 인터뷰도 많이 하지 않아왔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제프 베조스가 워싱턴 포스트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해 전망해보기 위해서는 그가 아마존을 어떻게 만들어왔는가를 알아보는 것이 좋은 힌트가 될 것입니다. 아마도 워싱턴 포스트의 미래를 가장 주목하고 있을, 뉴욕타임즈가 8/17 주말판 신문에서 상세히 보도한 내용을 간추려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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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9년 인터넷 닷컴 버블이 꺼지고 많은 회사들이 추락하던 시점, 아마존 역시 치솟는 부채와 끊임없는 손실에 직면했다. 그리고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는 월스트리트 전문가들에게 아마존은 비용절감을 ‘심각하게’ 추진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 어떻게 했을까?

아마존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처럼 공짜 마사지나 스시 요리로 직원들에게 혜택을 주는 회사가 아니었다. 당시 직원들이 공짜로 받았던 딱 하나의 상품은 바로 ‘아스피린’ 이었다. 그래서 제프 베조스는 아스피린을 없애버렸다.

공짜 아스피린을 없애버린 것이나 그의 커리어에서 발견되는 일련의 비슷한 사건들은, 제프 베조스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 성공에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해 내는 결단력과 디테일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것 말이다.

2. 제프 베조스와 함께 일해본 직원들의 증언을 들어보자.

– “우리 대부분에게는 ‘지구에서 가장 큰 서점을 만들자’ 라는 목표만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제프의 목표는 훨씬 더 원대했지요. 그의 목표는 ‘세계를 정복하자’ 였습니다” (Kerry Fried, 입사번호 251번)

– “커다랗게 활짝 웃는 표정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지만, 사실 그는 매우 까다롭고 철두철미한 사람입니다.” (James Marcus, 입사번호 55번)

– “그는 ‘보통 수준의 정리/통제에 집착하는 사람’ 을 ‘술에 취한 히피’ 정도로 만들어버립니다.” (Steve Yogge, 전직 아마존 직원)

– “제프 베조스는 고객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그 어떤 것에도 시간을 쓰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의 에고(ego)입니다.” (전직 아마존 직원)

– “일과 삶의 균형 (work-life balance) 은 자신의 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말하는 거죠.” (전직 아마존 직원)

3. 제프 베조스가 아마존 (Amazon) 대신에 원래 붙이고 싶어했던 이름은 ‘가차없는 (Relentless)’ 이었다.

2011년 5월, 폭염으로 인해 아마존 물류창고 직원들이 쓰러졌다. 다른 회사들이라면 에어콘을 설치하거나 직원들을 집에 보내 쉬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마존이 그렇게 한다면 미국 동부지역의 고객들은 기대하던 시일 내에 자신들이 주문한 제품을 받지 못하게 될 터였다.

그래서 아마존은 폭염이 지속되던 5일동안 물류창고 밖에 앰뷸런스와 구급 의료사들을 대기시키고 업무를 지속했다. 직원 15명이 병원으로 후송되고 30명이 구급 의료사들에게 치료를 받았다. 당시 일하던 직원들은 창고 안이 섭씨 46도까지 올라갔다고 증언했다. 이 사실을 폭로한 펜실베니아 지역신문 The Morning Call 의 기사에 대해서 아마존은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고, 나중에 물류창고에 에어콘을 설치한 사실도 언론에 브리핑을 하지 않았다.

4. 아마존은 지난 분기에 7백만 달러 순손실을 기록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는 아마존을 사랑한다.

아마존은 이윤을 고객들에게 바로 혜택으로 돌려준다. 가격 할인을 하고 가끔은 공짜 배송을 하고 만약 고객이 반품을 원할 경우에는 상품이 반품되기 전에 이미 환불금이 입금된다. 가끔은 더 한 것도 한다. 만약 당신이 책을 샀는데 원하지 않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래서 아마존에 환불을 원한다고 말하면 이런 메시지를 받게 될 것이다. “그 책은 그냥 가지시고 계좌에서 환불금을 확인하세요. 우리가 쏩니다!”

이것은 친구를 얻고 돈을 잃는 확실한 방법이다. 그러나 월스트리는 아마존이 언젠가 수백만의 고객들을 ‘현금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즉, 아마존이 물건을 팔 때마다 이윤이 생기는 구조가 될 것이라는 뜻이다. 어쩌면 다음해, 아니면 그 다음해가 될 수도 있다. 애초부터 베조스는 아마존을 실제(reality) 보다 잠재력(potential) 에 집중한 회사로 키워왔다.

5. 제프 베조스가 워싱턴 포스트를 사리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동안 그는 저널리즘 분야나 기자들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뭔가 홍보할 일이 있을 때만 기자들과 인터뷰를 했고, 정해진 메시지만 답했다. 그는 개인의 사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아마존의 분기 실적에 대해 기자와 애널리스트들과 대화를 할 때는 항상 애매모호한 답변들만 오간다. 심지어 아마존에 대한 모든 기사에는 이런 문장이 꼭 붙는다. “아마존 대변인은 코멘트를 거부했다.” 이번 뉴욕타임즈 기사에서도 아마존 대변인 Drew Herdener 는 코멘트를 거부했다.

박소령

출처: 뉴욕타임즈, 링크 

[저널리즘의 미래 14] 신문사와 출판사가 찻집을 내는 까닭은? 온오프라인 통합 플랫폼 트렌드

1. 지난달 중순 신사동 가로수길의 한 커피숍에 ‘WSJ cafe’란 간판이 내걸렸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The Wall Street Journal. 이하 WSJ)은 7월 10일~11일 양일 간 ‘WSJ 카페’를 열고 독자들을 초대해 공개 인터뷰를 진행했다. 커피 향이 가득한 공간에서 수십 명의 독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윤선 여성 가족부 장관, 이정웅 선데이토즈 대표 등 명사들의 인터뷰가 진행되었고, 구글 행아웃으로 실시간 생중계되었다. 현장에 있는 독자는 물론 참석하지 못한 독자들과도 화상 연결을 통해 질의 응답도 이어졌다. 사전 공지와 참가 신청은 페이스북과 지면광고 등 온오프라인을 통해 이루어 졌다. 각각의 인터뷰 기사는 WSJ 한글판 홈페이지(kr.wsj.com)에 게재되었고, 이 행사를 소개한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500명 가까이 ‘좋아요’를 눌렀다. 런던, 베를린, 뉴욕, 도쿄에 이어 서울에서 열린 ‘WSJ 카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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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6월 초 런던에 ‘# GuardianCoffee’를 열고 두 달째 운영해오고 있다. 벽면을 장식한 대형 디지털 디스플레이에서 트위터 화면이 실시간으로 흐르고 테이블마다 아이패드가 장착되어 있는 이곳은 커피숍이자 모두에게 열려있는 가디언의 뉴스룸이다. 이곳에서 누구나 참여 가능한 공개 인터뷰는 물론 각종 대담과 팟캐스트가 수시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지난 8월 15일에는 기술 서적 ‘untangle the web’의 저자 Alecks Krotoski와 가디언의 기술파트 부장인 Jemima kiss의 대담에 독자들이 초대되었다. 그 동안 가디언은 홈페이지에 편집회의를 공개해 독자들과 함께 정보 수집과 취재를 진행하고, 모바일 앱을 통해 독자들이 기사 작성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등 온라인 기술의 발달을 적극 활용한 오픈 저널리즘을 지향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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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GuardianCoffee와 WSJ카페는 기존 언론사가 취재 현장을 개방해 독자들과 직접 만나서 의견을 경청하고 기사에 반영할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을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인터넷과 스마트폰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노력으로 언론사들이 기존의 폐쇄적인 기사의 생산 및 유통 방식에서 벗어나 1) 공유, 개방, 협력, 소통에 기반한 오픈 저널리즘을 추구하고, 2) 오픈 저널리즘이 실현되는 장소로 사람과 사람이 눈을 마주치고 대화할 수 있는 찻집,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통합 플랫폼을 시도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4. 지난 해 일본 시모키타자와 역 인근 건물 2층에 문을 연 서점 B&B는 Book&Beer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맥주를 파는 서점이다. 그런데 B&B의 페이스북을 보면 책이나 맥주 보다는 끊임없이 열리는 이벤트를 알리고 후기를 공유하는 데 주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B&B에서는 매일 저녁 8시부터 2시간 가량 이벤트가 열리는데 작가, 평론가, 편집자, 블로거 등이 참석한 강연이나 대담에 30명~50명 가량 참석한다고 한다. 참석비는 1500엔이고 음료 한 잔에 500엔을 추가로 받는다. 보통 서점에서 열리는 홍보용 작가 사인회나 대담과는 달리 처음부터 유료 이벤트 자체를 수입원으로 기획된 점이 특징이다. B&B를 공동 운영하는 북코디네이터 우치노마 신타로는 책과 관련된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이윤 창출은 물론 저자와 독자, 서점간의 긴밀한 네트워크를 통해 서점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미디어가 되는 가능성을 찾고 있다고 한다.

5. 이러한 시도는 전자책과 인터넷 서점에 밀려 위기에 처한 우리 출판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에는 출판사들이 운영하는 ‘책 파는 찻집’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창작과 비평사가 서교동에 문을 연 ‘인문까페 창비’는 현재 블로그를 통해 독자들로부터 8월29일에 열리는 정이현 작가 낭독회 참여 신청을 받고 있다. 블로그에는 지난 8월 8일 김조광수 감독과 김승환 커플의 지지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당연한 결혼식’ 카운트다운 파티 후기와 사진도 올라와 있다. 같은 날 오전에는 이곳에서 김조광수 커플이 미디어를 대상으로 기자회견이 열기도 했다. 역시 독자와 미디어가 관심을 가질만한 오프라인 이벤트를 통해서 온라인에서 동시에 이슈화하고 사람들의 발길을 모으려는 전략이다.

6. 미국의 비영리탐사보도 전문매체인 ‘프로퍼블리카(Pro Publica)’의 아만다 자모라 편집장은 지난달 컬럼비아 저널리즘스쿨에서 열린 강연에서 “이제껏 언론은 은밀하게 취재하고 SNS는 그 결과물을 전달하거나 사후 피드백하는 기능만 했다면, 앞으로는 취재 과정에서 SNS를 통해 소통하고 공개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해 내야 한다. ”고 말했다. 이제는 기존 언론 고유의 탐사보도 영역까지 SNS를 통한 개방과 소통이 요구되는 시대다. 최근 미디어와 출판계에서 시작된 온오프라인 통합 플랫폼의 다양한 실험들이 SNS 시대의 저널리즘에 새로운 비전을 줄 수 있을지 기대된다.

김재은

* 저널리즘의 미래 이전 글들을 보시려면, 링크

참고: 코트라(KOTRA) 글로벌 윈도우, 링크 

[유민영의 위기전략 26] 새로운 전략의 출발 : 정확하게 정의하라, 새롭게 정의하라 – ‘시간선택제 일자리’라는 새로운 정의

“새로운 언어 없이 새로운 세계는 없다.”
– 30세, 잉케보르크 바흐만

어떤 사건과 정책, 범주의 정의를 두고 다투는 일이 늘어가고 있다. 고도화되고 섬세해진 사회가 그에 준하는 이름과 정의를 수정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일이지만, 그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대중의 충돌은 전통의 권력과 새로운 힘의 대결을 동반하기도 한다. 또 산업의 지도를 바꾸기도 한다. 통신사들은 새로운 시장과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알다가도 모를 새로운 단어를 끊임없이 창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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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하나 : 미 국립암연구소의 제안, ‘암의 정의를 바꾸자’

1. 미국 국립암연구소는 최근 내놓은 보고서를 통해 암의 정의를 바꾸자는 제안을 했다. 암에 대한 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기준이 모호해 과잉진단과 과잉진료를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2. 과도한 의료 행위가 때때로 인간의 공포와 맞물릴 때 우리는 치료와 치유의 반대편에 서는 경우를 보게 된다. 암에 대한 정의의 확장이 두려움에 기초하고 있고 새로운 의학의 발전을 담보하고 있지 않을 때 생기는 ‘갭’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암’이라는 단어가 실체적 진실과 정확한 현실에 접근하는데 방해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3. 보고서는 지난 35년간 암 진단 건수가 크게 늘어난데 비해 암 사망률이 크게 줄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암으로 보기 어려운, 치료할 수 있는 수준의 상태인 초기단계들의 환자들에게 암 진단이 내려진 경우가 많았다는 뜻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국내에서도 환자들이 크게 증가했지만 생존율이 99 퍼센트가 넘는 갑상선암, 여성들이 걸리는 유방암, 남성들의 경우 전립선암에서 과잉진단이 많이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4. 암에 대한 엄격하고 새로운 정의는 환자를 과도한 공포와 부적절한 의료행위로 부터 보호하는 일이다. 이름을 부여하고 정의하는 것은 현재의 세계를 정확하게 정의하는 행위다. 그러나 이해관계의 충돌과 전통적 힘의 권위는 정확한 접근을 훼손하기도 한다.

에피소드 둘 : 몬산토(Monsanto) 보호 법안과 농민 보장 규정(Farmer Assurance Provision) 

1.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4월, 상원이 발의한 법안(HR933)에 서명했다. ‘해당 법안은 유전자재조합 종자(GMO)와 관련하여 어떠한 건강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연방법원이 논란이 된 유전자재조합 종자의 판매 또는 경작을 금지시키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에서는 GMO를 ‘유전자 변형 농산물’이라 번역한다. ‘재조합’과 ‘변형’은 부정의 의미로 볼 때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유전공학과’는 ‘생명공학과’로 변신했다.

2. 법안의 논란 과정에서 환경단체와 소비자, 시민단체들은 대표적 기업인 ‘몬산토(사)가 중심이 된 생명공학 업계가 법원이 불법으로 간주한 상황에서도 유전자재조합 작물을 계속해서 경작할 목적으로 마련된 것이라는 주장’을 하며 이 법안을 ‘몬산토 법안’이라고 부른 것이다. 미 상원은 생명공학업계를 대변하는 로비스트들의 활약 속에 이번에는 재빨리 법을 통과시켰고 오바마 대통령도 이를 추인한 것이다.
대표적 GMO 기업 몬산토를 부각시켜 부정의 의미를 최대화하려는 의도를 표현한 것이다.

3. 반면 미국 정부와 업계는 농민 보장 규정(Farmer Assurance Provision)이라고 불러왔다. 농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실질적인 주체가 되는 기업을 숨기고 농민을 방패삼아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해관계자 중 농민이라는 주체를 부각시켜 부정의 이슈를 극복하려는 의도를 표현한 것이다. 이른바 주체 전이 전법이다.

에피소드 셋 : ‘시간제 일자리’와 ‘시간선택제 일자리’ 

1. 대통령이 이름과 정의에 대해 신경을 쓰는 것은 좋은 일이다. 정확한 개념으로 국민이 정부의 정책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불필요한 논쟁과 비용을 줄이는 중요한 해법이기 때문에 그렇다.

2. 대통령은 ‘파트타임’이라는 불안한 비정규직 일자리는 상징을 바꾸고 싶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용어를 고려해보라는 지시를 내렸고 공모라는 방식까지 지정을 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8월 국무회의에서 “시간 선택제 일자리로 바꾸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괜찮은 것 같죠? 생각이 달라지지 않느냐”고 발언해 자신의 제안과 실행 아이디어를 갈음했다.

3. ‘선택’은 선거의 용어다. 정부가 사용하는 정책용어가 아니라 ‘주어’를 상기시키는 언어다. 국민이 선택한다는 주체의 전환이 이 이름의 핵심이다. 좋은 이름이다.

4. 그러나 이 이름을 끌어내는 데 정책의 전환이 뒷받침되지 않는 것은 새로운 이름의 의미를 약화시킨다. 이름을 정의하는 것은 인식의 전환을 동반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했다. 현재까지 정부의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아직 비정규직 파트타임을 부르는 이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형식의 변화가 인식의 변화를 동반하지 않는다면 종종 형식에만 신경을 쓴다는 반작용을 부르게 된다. 좋은 정책에 붙는 이름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했어야 했다.

5. 더불어 대통령의 모든 것을 결정하고 집행하고 발표하는 방식의 위험성이다. 정부의 정책이란 기획과 실행, 결정과 발표의 행위가 층위별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통령은 이 모든 것을 다 했다. 이것은 합의에 기초한 이름의 변화보다 명령에 기초한 이름을 연상시킨다.

좋은 시도, 좋은 이름이 좋은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 전략의 변화란 전면적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유민영

이미지 출처: waverley church,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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