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심화를 위한 노트 16] 메시지를 강요하지 말자. 담담한 묘사로도 전달이 가능하다.

자신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글을 가끔 접한다.
주장엔 공감하지만 글의 전개방식이 못마땅하다.
나중에는 주장에 공감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진다.
설득은 독자와 공감하는 과정이다.
자신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되풀이하면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분하게 논리를 전개해야 한다.
수필이나 서정적인 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런 글일수록 오히려 더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핵심을 정형화된 문구로 만들어 드러내기보다는,
담담하게 인물, 장면, 대화를 묘사하다 보면
의도한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다.
다음은 노 대통령 재임 중에 쓴 국정일기,
‘파격과 변화로 혁신, 또 혁신’에서 인용한 대목이다.
대통령의 이야기를 열거하면서 그의 캐릭터와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대통령은 오늘도 끊임없이 사고의 전환을 역설한다. 특히 수도권 중심 사고를 벗어나 지방이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사고의 전환을 거듭거듭 이야기하고 있다. 낙후지역 개발 문제를 다룬 15일 국정과제회의에서도, 그 다음날 포항에서 열린 지역혁신협의회 회의에서도 대통령은 참여정부 균형발전 전략의 토대가 되고 있는 혁신의 철학을 진솔하게 표현했다.

“자원을 투입할 때에는 성공이 확신되는 쪽에 투자를 집중하겠다.”
“기존 사업도 성과가 검증되지 않으면 돈을 쓰지 않는다. 불용액으로 남는 한이 있어도 성과 있는 것에만 지원하겠다.”
“이제는 지방이 주도하고 중앙이 지원하는 체계로 간다.”
“옛날에는 대통령이 이렇게 내려오면 지시를 내리고 지역사회에 선물을 주었지만, 이제는 지역혁신협의회가 어떻게 토론하고 논의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 그 지역 스스로의 노력이다.”
“더 이상 수도권을 쳐다보지 말고, 지방발전의 창의적 전략을 제출해 달라.”
“창을 열고 크게 바라보자.”
이렇듯 대통령은 쉼 없이 파격 또는 새로운 변화에 앞장서고 있다. 며칠 전 한·일정상회담 준비상황을 보고받는 자리에서의 일이다. 준비 팀이 보고하기를 이번 회담은 전 행사가 노타이로 진행된다고 했다. 대통령은 특유의 애드리브로 다시 한 번 좌중을 웃겼다.
“난 넥타이를 안 매면 인물이 죽는데….”

윤태영

[글쓰기 심화를 위한 노트 13] 까다로운 마무리, 여운을 남기는 방법도 좋다.

 

먼저 예문으로 시작하자.

자이툰 방문을 마친 대통령 일행은 쿠웨이트 무바라크 공항으로 돌아온 후 기자들의 기사 송고를 위해 한 시간 더 그곳에 머물렀다. 이 행사를 끝으로 그는 라오스와 유럽 3개국 순방 일정을 마무리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서울공항에 도착한 것이 12월 9일 새벽 4시 40분. 귀국해 보니 여론이 바뀌어 있었다. 대통령에 대한 칭찬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 보수언론까지도 칭찬 일색이었다. 더불어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도 급상승했다.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감동’을 이야기했다. 그는 멋쩍은 반응을 보였다.
“나는 그렇게까지 기대를 한 것이 아니었는데……”
(<기록> ‘20. 자이툰 부대 방문’에서 인용)

대통령의 말로 한 편의 글을 마무리했다.
여러 가지 아쉬움과 회한이 섞인 한 마디였다.
자이툰 부대 방문으로 지지도가 급격히 상승하자
상념에 젖은 대통령이 했던 말이다.
자이툰 부대를 방문하게 된 과정도 중요하지만,
지지도에 대한 대통령의 시각도 중요하다는 판단으로
이 한마디를 글의 끄트머리에 배치했다.
물론 글의 주된 흐름은 자이툰 부대 방문이다.
지지도에 대한 생각은 부차적인 주제일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이 문제는 깊이 파고들어갈 이유가 없다.
다만 이런 계기에 고민의 실마리를 던진다는 생각으로
마지막 대목에 여운을 남기듯 소개했다.

이처럼 글의 주된 흐름에서는 벗어나지만,
고민이 필요하거나 생각해봐야 할 문제를
여운을 남기듯 던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다만 생각의 단초를 던지는 데 그치는 게 좋을 듯싶다.
지나치게 단정하는 표현으로 마무리를 한다면
독자에게 생각의 계기를 제공하기보다
오히려 부담감을 줄 수 있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마무리 문장은 글쓴이의 지문보다
위와 같은 대화체가 더 적절하다는 판단이다.

[글쓰기 심화를 위한 노트 10] 만담이 아닌 대화를 살리자. 핵심 메시지를 담아보자.

대화체는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살아있는 언어들이 생동감을 준다.
다만 긴 대사는 곤란하다.
만담처럼 느껴질 뿐 아니라 요점도 잘 전달되지 않는다.
이야기가 길어지면 차라리 지문으로 처리하는 게 좋다.
가끔은 짧은 대사들이 구성된 긴 대화로
핵심메시지를 전달하려고 시도해보자.
길게 설명하는 대신 다음의 사례를 소개한다.

노무현 후보는 하나하나의 질문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또박또박 대답을 했다.“좋아하시는 영화는요?”
“’엘시드’, ‘라이언스 도터’, 그래, ‘오발탄’도 재밌었지.”
“좋아하시는 연예인은?”
“텔레비전에 나오면 그냥 다 좋던데!”
“즐겨보는 TV프로그램은 있나요?”
“뉴스는 직업이 그래서, 그리고 도전 1000곡!”
멋있고 근엄하게 보이려는 노력은 아예 포기한 것일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속에 있는 생각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나온다.
“아내 외에 다른 여성에게 끌린 적은 몇 번입니까?”
“비밀이다!”
“보신탕을 먹어본 적 있습니까?”
“물론 있지!”
“정치가가 아니라면 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로비스트! 건강한 로비 문화를 만들고 싶다.”
“겨울엔 내복 입으십니까?”
“안 입고 살았는데 올해는 귀하신 몸이 되어서 입었다.”
“외모 중 가장 자신 있는 곳과 못마땅한 곳은 무엇입니까?”
“자신 있는 곳도 없고, 자신 없는 곳도 없다. 다만 머리카락 다듬기가 어렵다.”
“대통령이 되면 잃을 것 같은 3가지는?”
“자유, 시간, 돈.”
“대통령 의전차량이 외제차인데, 대통령이 되면 국산차로 바꿀 용의는 없습니까?”
“무슨 이유가 있겠지. 있는 것 그냥 쓰지 뭘!”
(2001년 필자의 칼럼 <너무나 솔직담백한, 그래서 존경스러운>에서 인용)

윤태영

[글쓰기 심화를 위한 노트 05] 캐릭터를 당당하게 드러내자. 단점도 강점으로 승화된다.

특정 인물을 묘사하는 글을 써야 할 때가 있다.
그 특정 인물이 바로 자기 자신인 경우도 있다.
다른 누군가든 자기 자신이든,
인물을 묘사할 때면 캐릭터를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
다른 사람과 분명한 차별화를 시도해야 한다.
물론 객관적인 묘사가 필요하다.
일방적으로 강점을 과장되게 묘사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서술하면 좋다.
관찰자나 기록자가 장단점을 가려 전달하지 말고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자는 것이다.
사실을 담백하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단점이나 약점도 오히려 장점이나 강점으로 바뀔 수 있다.
의도적으로 강점만 전달하려다 보면
거부감을 주거나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자기소개서를 쓸 때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단점을 억지로 숨기려고 할 필요는 없다.
단점이 함께 설명이 되어야
강점이 더 크게 부각되어 보이게 된다.
다음의 사례는 퇴임 이후 노대통령의 휴가 장면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묘사해낸 장면이다.

대통령은 사람들의 무리를 우회하는 일도 없고, 내미는 손길을 거절하는 법도 모릅니다. 그럴수록 경호팀의 긴장은 두 배 이상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때로는 비서들이 지나치다 싶어 만류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대통령이 비서들을 설득합니다. 어린이들에게는 더욱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작은 격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구경 잘 했어?”(자생식물원에서 어린이 관람객에게)
“그래, 이리 와서 손 한번 잡아봐라.”(청령포에서 대통령앞에서 수줍어하는 어린이에게)
“나중에 이 사진 보면서 나보고 아빠라고 하지 마라. 하하.”(자생식물원 관람 도중 엄마와 두 어린이만 온 가족과 사진을 찍으며)(봉하일기, <대통령의 여름휴가(2008, 8.4)>에서 인용)

윤태영

[글쓰기 심화를 위한 노트 04] 하나의 장면을 한 꼭지의 글로 만드는 연습을 하자.

2005년 5월 중순, 노무현 대통령은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을 순방했다. 우즈베키스탄에는 스탈린 시절에 강제 이주된 고려인의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그는 그들이 살아온 힘겨운 세월과 고통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꼭 한번 방문하고 싶었던 곳이 우즈베키스탄이었다. 영빈관의 응접실에서 그는 고려인들을 맞이했다. 통역이 필요했다. 대부분 2세와 3세들이기 때문이었다. 이주 고려인 1세에 해당하는 고령의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는 그들 1세가 낯선 땅에서 겪어야 했던 고초와 고난의 시간들에 대해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던 그가 갑자기 손에 든 말씀자료로 눈길을 떨어뜨렸다. 해야 할 무슨 말을 찾으려는 듯이 보였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고개를 숙인 채 메모카드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하는 대통령. 그는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인 채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작은 물방울 하나가 떨어져 메모카드를 적시었다. 눈치를 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았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고개를 들어 할머니를 응시했다. 그의 눈은 안타까움과 연민으로 벌겋게 충혈이 되어 있었다. 인간 노무현의 눈물이었다.(<기록>에서 인용)

중앙아시아 이주 고려인들에 대해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미안함의 감정이 충분히 그려졌다.
하나의 장면을 하나의 글로 만들기 위해서는
앞뒤의 과정과 결과를 충분히 취재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짧은 시간이 갖는 의미를 풍부하게 전달할 수 있다.
말이나 동작이 아닌 분위기도 세밀하게 묘사하면 더 좋다.
그래야 주인공의 짧은 언행이 부각되고
독자의 시선이 집중될 수 있다.
다음의 사례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대통령에게 자연보다 더 소중한 존재는 바로 그 속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휴가중인 대통령의 모습과 마주치자 각양각색의 표현으로 반가움을 전했습니다. 일정이 예정된 곳이나, 갑작스레 모습을 보인 길거리에서나 반가움의 반응들은 한결같았습니다. 핸드폰 카메라를 높이 드는 사람, 대통령의 출현 소식을 친구에게 전하러 뛰어가는 사람, 사인받을 종이와 펜을 찾으러 집으로 들어가는 사람. 어떤 작은 마을에서는 주민 전부가 나와 대통령을 맞았습니다. 무더운 뙤약볕의 강릉 선교장에서도, 굵은 빗줄기가 하염없이 내리는 영월의 청령포에서도, 사람들은 퇴임한 대통령의 친구 같은 출현에 환호와 박수를 보냈습니다. 스스럼없이 대중 앞에 설 수 있는 대통령의 소탈한 당당함, 그리고 이제는 전직 대통령을 거리낌 없이 이웃처럼 대할 수 있는 사람들의 여유가 빚어낸 아름다운 장면들입니다.(봉하일기, <대통령의 여름휴가(2008. 8.4)>에서 인용)

 

윤태영

[글쓰기 심화를 위한 노트 03] ‘눈물’이란 표현이 독자를 슬프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영화에서 가장 슬픈 장면이 있다.

주인공이 처한 현실이 참담하기 그지없을 만큼 슬픈데,
정작 주인공은 울음을 참고 있는 모습이다.
충분히 일리 있는 분석이다.
통곡해야 마땅한 상황임에도 울지 않는 모습이 더 슬픈 법이다.
글에서도 마찬가지다.
‘슬프다.’, ‘울고 싶었다.’, ‘가슴이 미어졌다.’…
이런 표현을 동원해야만 독자를 울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분위기를 차분하게 묘사하는 게 중요하다.
누군가 기뻐하는 장면도 다르지 않다.
단순히 ‘그는 기뻐했다.’라고 하지 말고
분위기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묘사해보자.
이런 서술은 어떨까?
“그는 평소와 달랐다. 눈에 생기가 돌았다. 공연히 히죽히죽 웃기도 했고, 옆의 친구를 그냥 툭툭 건드리며 장난을 쳤다.”
주변 분위기만 잘 그려내도
주인공의 슬픔을 어느 정도 묘사할 수 있다.
다음의 글을 보자.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직전, 사저의 분위기를 묘사한 것이다.

“4월 중순, 대통령의 사저는 생기를 잃어가면서 때로는 적막감마저 휘감고 돌았다. 그 안에 선 대통령은 유난히 머리가 희여 보였다. 사저를 둘러싸고 형형색색들의 꽃들이 피어나 울적한 대통령을 위로하려 했지만, 대통령의 시야에 드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대통령의 외로웠던 봄>, 2009년 5월)

윤태영

[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27] 대통령이 강조했던 글쓰기 지침

관저 식탁에서의 2시간 강의
– 노무현 대통령의 글쓰기 지침

2003년 3월 중순, 대통령이 4월에 있을 국회 연설문을 준비할 사람을 찾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늘 ‘직접 쓸 사람’을 보자고 했다.
윤태영 연설비서관과 함께 관저로 올라갔다.

김대중 대통령을 모실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통령과 독대하다시피 하면서 저녁식사를 같이 하다니.
이전 대통령은 비서실장 혹은 공보수석과 얘기하고, 그 지시내용을 비서실장이 수석에게, 수석은 비서관에게, 비서관은 행정관에게 줄줄이 내려 보내면, 그 내용을 들은 행정관이 연설문 초안을 작성했다.

그에 반해 노무현 대통령은 단도직입적이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를 원했다.
“앞으로 자네와 연설문 작업을 해야 한다 이거지? 당신 고생 좀 하겠네. 연설문에 관한한 내가 좀 눈이 높거든.”

식사까지 하면서 2시간 가까이 ‘연설문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 특강이 이어졌다.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열심히 받아쓰기를 했다.
이후에도 연설문 관련 회의 도중에 간간이 글쓰기에 관한 지침을 줬다.

다음은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1. 자네 글이 아닌 내 글을 써주게. 나만의 표현방식이 있네. 그걸 존중해주게. 그런 표현방식은 차차 알게 될 걸세.
2. 자신 없고 힘이 빠지는 말투는 싫네.
‘~ 같다’는 표현은 삼가 해주게.
3. ‘부족한 제가’와 같이 형식적이고 과도한 겸양도 예의가 아니네.
4. 굳이 다 말하려고 할 필요 없네. 경우에 따라서는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도 연설문이 될 수 있네.
5. 비유는 너무 많아도 좋지 않네.
6. 쉽고 친근하게 쓰게.
7. 글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고 쓰게. 설득인지, 설명인지, 반박인지, 감동인지
8. 연설문에는 ‘~등’이란 표현은 쓰지 말게. 연설의 힘을 떨어뜨리네.
9. 때로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도 방법이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킹 목사의 연설처럼.
10. 짧고 간결하게 쓰게. 군더더기야말로 글쓰기의 최대 적이네.
11. 수식어는 최대한 줄이게. 진정성을 해칠 수 있네.
12. 기왕이면 스케일 크게 그리게.
13. 일반론은 싫네. 누구나 하는 얘기 말고 내 얘기를 하고 싶네.
14. 추켜세울 일이 있으면 아낌없이 추켜세우게. 돈 드는 거 아니네.
15. 문장은 자를 수 있으면 최대한 잘라서 단문으로 써주게.
탁탁 치고 가야 힘이 있네.
16. 접속사를 꼭 넣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말게.
없어도 사람들은 전체 흐름으로 이해하네.
17. 통계 수치는 글을 신뢰를 높일 수 있네.
18. 상징적이고 압축적으로 머리에 콕 박히는 말을 찾아보게.
19. 글은 자연스러운 게 좋네. 인위적으로 고치려고 하지 말게.
20. 중언부언하는 것은 절대 용납 못하네.
21. 반복은 좋지만 중복은 안 되네.
22. 책임질 수 없는 말은 넣지 말게.
23. 중요한 것을 앞에 배치하게. 뒤는 잘 안 보네. 문단의 맨 앞에 명제를 던지고, 그 뒤에 설명하는 식으로 서술하는 것을 좋아하네.
24. 사례는 많이 들어도 상관없네.
25. 한 문장 안에서는 한 가지 사실만을 언급해주게. 헷갈리네.
26. 나열을 하는 것도 방법이네. ‘북핵 문제, 이라크 파병, 대선자금 수사…’ 나열만으로도 당시 상황의 어려움을 전달할 수 있지 않나?
27. 같은 메시지는 한 곳으로 몰아주게. 이곳저곳에 출몰하지 않도록
28. 백화점식 나열보다는 강조할 것은 강조하고 줄일 것은 과감히 줄여서 입체적으로 구성했으면 좋겠네.
29. 평소에 우리가 쓰는 말이 쓰는 것이 좋네. 영토 보다는 땅, 치하 보다는 칭찬이 낫지 않을까?
30. 글은 논리가 기본이네. 좋은 쓰려다가 논리가 틀어지면 아무 것도 안 되네.
31. 이전에 한 말들과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네.
32.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표현은 쓰지 말게. 모호한 것은 때로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지금 이 시대가 가는 방향과 맞지 않네.;
33. 단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 글은 써서는 안 되는 글이네.

대통령은 생각나는 대로 얘기했지만, 이 얘기 속에 글쓰기의 모든 답이 들어있다.
지금 봐도 놀라울 따름이다.

언젠가는 음식에 비유해서 글쓰기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1. 요리사는 자신감이 있어야 해. 너무 욕심 부려서도 안 되겠지만.
글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야.
2. 맛있는 음식을 만들려면 무엇보다 재료가 좋아야 하지. 싱싱하고 색다르고 풍성할수록 좋지. 글쓰기도 재료가 좋아야 해.
3. 먹지도 않는 음식이 상만 채우지 않도록 군더더기는 다 빼도록 하게.
4. 글의 시작은 에피타이저, 글의 끝은 디저트에 해당하지. 이게 중요해.
5. 핵심 요리는 앞에 나와야 해. 두괄식으로 써야 한단 말이지. 다른 요리로 미리 배를 불려놓으면 정작 메인 요리는 맛있게 못 먹는 법이거든.
6. 메인요리는 일품요리가 되어야 해. 해장국이면 해장국, 아구찜이면 아구찜. 한정식 같이 이것저것 다 나오는 게 아니라 하나의 메시지에 집중해서 써야 하지.
7. 양념이 많이 들어가면 느끼하잖아. 과다한 수식어나 현학적 표현은 피하는 게 좋지.
8. 음식 서빙에도 순서가 있잖아. 글도 오락가락, 중구난방으로 쓰면 안 돼. 다 순서가 있지.
9. 음식 먹으러 갈 때 식당 분위기 파악이 필수이듯이, 그 글의 대상에 대해 잘 파악해야 해. 사람들이 일식당인줄 알고 갔는데 짜장면이 나오면 얼마나 황당하겠어.
10 요리마다 다른 요리법이 있듯이 글마다 다른 전개방식이 있는 법이지.
11. 요리사가 장식이나 기교로 승부하려고 하면 곤란하지. 글도 진정성 있는 내용으로 승부해야 해.
12. 간이 맞는지 보는 게 글로 치면 퇴고의 과정이라 할 수 있지.
13. 어머니가 해주는 집밥이 최고지 않나? 글도 그렇게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야 해.

이날 대통령의 얘기를 들으면서 눈앞이 캄캄했다.
이런 분을 어떻게 모시나.
실제로 대통령은 대단히 높은 수준의 글을 요구했다.
대통령은 또한 스스로 그런 글을 써서 모범답안을 보여주었다.

나는 마음을 비우고 다짐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가 아니라 대통령에게 배우는 학생이 되겠다고.
대통령은 깐깐한 선생님처럼 임기 5년 동안 단 한 번도 연설비서실에서 쓴 초안에 대해 단번에 오케이 한 적이 없다.

강원국 (라이팅 컨설턴트, 객원 필진)

[유민영의 위기전략 26] 새로운 전략의 출발 : 정확하게 정의하라, 새롭게 정의하라 – ‘시간선택제 일자리’라는 새로운 정의

“새로운 언어 없이 새로운 세계는 없다.”
– 30세, 잉케보르크 바흐만

어떤 사건과 정책, 범주의 정의를 두고 다투는 일이 늘어가고 있다. 고도화되고 섬세해진 사회가 그에 준하는 이름과 정의를 수정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일이지만, 그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대중의 충돌은 전통의 권력과 새로운 힘의 대결을 동반하기도 한다. 또 산업의 지도를 바꾸기도 한다. 통신사들은 새로운 시장과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알다가도 모를 새로운 단어를 끊임없이 창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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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하나 : 미 국립암연구소의 제안, ‘암의 정의를 바꾸자’

1. 미국 국립암연구소는 최근 내놓은 보고서를 통해 암의 정의를 바꾸자는 제안을 했다. 암에 대한 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기준이 모호해 과잉진단과 과잉진료를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2. 과도한 의료 행위가 때때로 인간의 공포와 맞물릴 때 우리는 치료와 치유의 반대편에 서는 경우를 보게 된다. 암에 대한 정의의 확장이 두려움에 기초하고 있고 새로운 의학의 발전을 담보하고 있지 않을 때 생기는 ‘갭’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암’이라는 단어가 실체적 진실과 정확한 현실에 접근하는데 방해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3. 보고서는 지난 35년간 암 진단 건수가 크게 늘어난데 비해 암 사망률이 크게 줄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암으로 보기 어려운, 치료할 수 있는 수준의 상태인 초기단계들의 환자들에게 암 진단이 내려진 경우가 많았다는 뜻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국내에서도 환자들이 크게 증가했지만 생존율이 99 퍼센트가 넘는 갑상선암, 여성들이 걸리는 유방암, 남성들의 경우 전립선암에서 과잉진단이 많이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4. 암에 대한 엄격하고 새로운 정의는 환자를 과도한 공포와 부적절한 의료행위로 부터 보호하는 일이다. 이름을 부여하고 정의하는 것은 현재의 세계를 정확하게 정의하는 행위다. 그러나 이해관계의 충돌과 전통적 힘의 권위는 정확한 접근을 훼손하기도 한다.

에피소드 둘 : 몬산토(Monsanto) 보호 법안과 농민 보장 규정(Farmer Assurance Provision) 

1.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4월, 상원이 발의한 법안(HR933)에 서명했다. ‘해당 법안은 유전자재조합 종자(GMO)와 관련하여 어떠한 건강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연방법원이 논란이 된 유전자재조합 종자의 판매 또는 경작을 금지시키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에서는 GMO를 ‘유전자 변형 농산물’이라 번역한다. ‘재조합’과 ‘변형’은 부정의 의미로 볼 때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유전공학과’는 ‘생명공학과’로 변신했다.

2. 법안의 논란 과정에서 환경단체와 소비자, 시민단체들은 대표적 기업인 ‘몬산토(사)가 중심이 된 생명공학 업계가 법원이 불법으로 간주한 상황에서도 유전자재조합 작물을 계속해서 경작할 목적으로 마련된 것이라는 주장’을 하며 이 법안을 ‘몬산토 법안’이라고 부른 것이다. 미 상원은 생명공학업계를 대변하는 로비스트들의 활약 속에 이번에는 재빨리 법을 통과시켰고 오바마 대통령도 이를 추인한 것이다.
대표적 GMO 기업 몬산토를 부각시켜 부정의 의미를 최대화하려는 의도를 표현한 것이다.

3. 반면 미국 정부와 업계는 농민 보장 규정(Farmer Assurance Provision)이라고 불러왔다. 농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실질적인 주체가 되는 기업을 숨기고 농민을 방패삼아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해관계자 중 농민이라는 주체를 부각시켜 부정의 이슈를 극복하려는 의도를 표현한 것이다. 이른바 주체 전이 전법이다.

에피소드 셋 : ‘시간제 일자리’와 ‘시간선택제 일자리’ 

1. 대통령이 이름과 정의에 대해 신경을 쓰는 것은 좋은 일이다. 정확한 개념으로 국민이 정부의 정책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불필요한 논쟁과 비용을 줄이는 중요한 해법이기 때문에 그렇다.

2. 대통령은 ‘파트타임’이라는 불안한 비정규직 일자리는 상징을 바꾸고 싶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용어를 고려해보라는 지시를 내렸고 공모라는 방식까지 지정을 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8월 국무회의에서 “시간 선택제 일자리로 바꾸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괜찮은 것 같죠? 생각이 달라지지 않느냐”고 발언해 자신의 제안과 실행 아이디어를 갈음했다.

3. ‘선택’은 선거의 용어다. 정부가 사용하는 정책용어가 아니라 ‘주어’를 상기시키는 언어다. 국민이 선택한다는 주체의 전환이 이 이름의 핵심이다. 좋은 이름이다.

4. 그러나 이 이름을 끌어내는 데 정책의 전환이 뒷받침되지 않는 것은 새로운 이름의 의미를 약화시킨다. 이름을 정의하는 것은 인식의 전환을 동반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했다. 현재까지 정부의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아직 비정규직 파트타임을 부르는 이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형식의 변화가 인식의 변화를 동반하지 않는다면 종종 형식에만 신경을 쓴다는 반작용을 부르게 된다. 좋은 정책에 붙는 이름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했어야 했다.

5. 더불어 대통령의 모든 것을 결정하고 집행하고 발표하는 방식의 위험성이다. 정부의 정책이란 기획과 실행, 결정과 발표의 행위가 층위별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통령은 이 모든 것을 다 했다. 이것은 합의에 기초한 이름의 변화보다 명령에 기초한 이름을 연상시킨다.

좋은 시도, 좋은 이름이 좋은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 전략의 변화란 전면적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유민영

이미지 출처: waverley church, 링크

[팔로우 저널리즘 2 – 힐러리 클린턴 2] 힐러리에겐 빌이 있다 – 빌 클린턴의 초능력, 만나는 사람에게 철저히 집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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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지난 8일 허핑턴포스트에 실린, 베스트셀러 ‘4시간’(The 4-hour Workweek)의 저자이자 2008년 TED의 화제의 강사 (강의: Smash fear, learn anything)인 팀 페리스의 글을 소개한다.
팀 페리스는 상대방에 대한 집중 능력이 뛰어난 클린턴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그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고, 그들에게 어떻게 영향력을 미치는지에 대한 5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힐러리 클린턴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로서 빌 클린턴의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알아보자. 전문 번역을 싣는다.

<빌 클린턴이 가진 초능력의 힘>
빌 클린턴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과 그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 전직 대통령인 그는 재창조의 귀재이다 – 어떤 누가 90년대 중반 스캔들을 기억하겠는가? – 그를 백악관으로 입성할 수 있도록 하였던 바로 그 힘이 최근에는 인터넷 최고 스타 반열에 들게 했다. 그는 인도주의적 활동으로 이름나 있다. 그는 채식주의자들의 건강 조언을 타인들과 공유한다. 그는 시골 오두막에 있는 베개에 수놓아져 있을 법한 현자의 조언과 같은 말을 별 어려움 없이 한다. (“당신의 소중한 내일을 다른 이들을 위해 사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을까? 그의 이러한 성공의 비결은 무엇인가? 그것은 간단하다: 클린턴은 자기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완벽하게 집중한다.

주의를 집중한다는 것은 매우 쉽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교류할 때 모든 관심을 집중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집중력이 분산되는 멀티태스킹의 시대에 – 디지털 디바이스와 살아있는 사람이 관심를 끌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시대 말이다 – 다른 사람에게 완전하게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스마트폰의 사용자들이 평균 6.5분마다 자신의 핸드폰을 확인한다는 것, 그리고 대화할 때 평균적으로 상대방에게 집중력의 1/3만을 사용한다는 사실에 비추어 본다면, 클린턴의 관심 집중 예술은 더욱 인상적이며 대단하게 보인다.

우리 자신의 주의력 결핍이 클린턴의 존재를 더 부각시키는 점도 있다. 2010년의 하버드 대학 연구에 의하면, 우리는 깨어있는 시간의 47%를 우리가 하고 있는 것보다는 다른 무언가를 생각하는데 소비한다고 한다. 그러나 클린턴에 대한 수많은 일화는 그의 전설적인 카리스마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완벽히 집중하는 것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보여준다.

클린턴이 가르쳐주는 5가지를 살펴보자.

1. 집중은 공감이다.

1992년 대통령 후보 토론회 도중, 클린턴과 조지 H.W. 부시는 국가 부채가 어떻게 개인에게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리고 두 정치인의 답변은 그들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대단한 통찰력을 제공했다.

부시는 “물가 인상이 어떻게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라는 설명을 하면서 중언부언 했고 자신에게 질문의 초점이 맞춰지는 것을 피하고자 했다. 반면 클린턴은 이 질문을 한 여인에게 다가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면서 부채가 그녀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질문하였다. 그는 자신이 아칸소주의 주지사로 있을 때 주민들이 어떻게 고통을 받고 있는지, 또한 그러한 사실이 자신에게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지 설명했다.

“우리 주에서 사람들이 실직할 때, 나는 그들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졌다.“

2. 집중은 강한 커뮤니케이터와 약한 커뮤니게이터 간의 차이를 만든다.

정치가로서 클린턴은 사람에게 말하는 것(Talking at)과 사람과 말하는 것(Talking to or with)의 차이를 인식하고 있었다. 영국신문사 가디언지의 알라스타 캠벨은 클린턴을 “내가 지금까지 본 가장 위대한 정치 커뮤니케이터”라고 지칭했다.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은 과거에도, 그리고 여전히 지금도 그의 비밀 병기이다. 위에서 언급한 1992년 대선 토론 영상을 보라.

3. 사람들은 당신이 실제로 듣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고, 그것을 사랑한다.

이것은 매우 단순하고 분명해 보이지만, 클린턴은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할 수 없거나 하지 않는 것을 함으로서 그의 경력을 쌓았다: 보통사람과 만나서 눈을 마주보고 그들의 말을 경청하는 것. 그의 경청 능력은 그가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능력에 도움이 되었다.

클린턴은 자서전 <My Life>에서 “평생동안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이끌렸다. 나는 그들을 알고, 이해하고, 느끼고 싶었다”고 서술했다.

4. 눈을 맞추는 것이 핵심이다

오늘날 심리학에서는 눈을 맞추는 것이 “가장 강력한 비언어적 의사소통 형태“라고 한다. 마이애미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누군가에 집중할 때 43%이상 눈을 바라본다고 한다.

클린턴이 강렬하게 눈을 맞추는 것은 그가 보여주는 관심의 강력한 표현이고 어떤 경우에는 상대방의 매우 강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영국언론사 <메트로>에 따르면, 1999년 데이비드 레터맨과 가진 인터뷰에서, 배우 질리안 앤더슨 (최고 “X 파일”에 특수 요원 스컬리 역할로 잘 알려진)은 클린턴 대통령의 섹스 어필의 비밀이 “눈을 맞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대부분은 여성이었고 줄을 서 있었다. 그가 당신에게 다가오면, 그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의 눈을 바라본다”고 앤더슨이 말했다. “다음 사람에게로 가면서, 그는 당신을 돌아보며 다시 눈을 바라본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그로부터 어떤 연락이 오지 않을까하고 기대했다. 그러나 연락은 없었다. 미국의 모든 여성들이 그러한 기대를 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5. 집중 능력은 향상될 수 있다

집중력이 탁월한 사람들은 결코 태어날 때부터 그런 것이 아니라 훈련된 것이다. 명상은 다른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능력을 개선하는 방법 중 하나다. 불교신자인 교사 샤론 살즈버그는 “명상을 통해 주의력을 훈련하면 우리의 눈이 열린다”고 하였다.

클린턴은 명상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타임즈오브인디아>에 따르면, 그는 건강과 행복을 위해 불교식 명상을 실천한다.

연구에 의하면 명상은 집중력을 향상시키고 산만함을 피할 수 있는 능력을 개선시킨다. 운동이 몸의 근력을 향상시키듯 명상은 규칙적인 훈련을 통해 집중할 수 있는 근육을 키워줄 것이다. 빌 클린턴이 보여준 것처럼, 명상은 당신 인생의 모든 측면에서 더욱 효율적이 될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

번역 장유진 (캠페인 컨설턴트, 객원 필진)

출처: 허핑턴포스트, 링크
동영상 출처: 유튜브, 링크

[커뮤니케이션 단신] 미국 대통령들의 TV 연설 변천사 – 무엇이, 왜 바뀌었나?

1. 공중파 황금시간대에 편성된 정규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화면에 등장하는 한 사람이 있다. 국기와 사진들을 등뒤에 두고 자신의 집무실 책상 의자에 앉아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양팔로 제스처를 취해가면서 말을 한다. 그는 미국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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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국 대통령이 공중파를 통해서 국민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한 역사는 TV 의 역사와 일치한다. TV 로 연설을 한 첫번째 대통령은 트루먼 대통령이었다. 1947년 당시 미국에는 겨우 TV 가 4만 4천대 밖에 없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그의 첫번째 TV 연설로 미국 국민들에게 세계 2차 대전이 막 끝난 유럽을 도울 수 있도록 음식을 절약하자는 연설을 했다. 1950년 전체 가구의 9% 만이 TV 를 가지고 있었지만 1960년에는 87% 로 급증했다. 사람들의 통념과 달리, 당시 대통령이었던 아이젠하워가 “첫번째 TV 대통령” 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케네디가 아니라) 아이젠하워는 1957년, 미국 남부 아칸소주 리틀록에서 백인들만 다니던 고등학교에 흑인 고등학생 9명이 같이 다닐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치안유지를 위해 군대를 파견했다. 그리고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와 자신이 이 결정에 대해 얼마나 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국민들에게 더 직접적으로 다가가기 위해서 TV 연설을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 후 미국 역대 대통령 중 가장 훌륭한 ‘TV 커뮤니케이터’ 였던 레이건은 8년 재임기간 중 29번이나 TV 연설을 했고 TV 를 싫어했던 닉슨도 5년 동안 22번이나 연설을 했다.

3. 그런데 2000년대 이후 미국이 맞이한 두 명의 대통령, 부시와 오바마는 모두 집무실에서 진행하는 TV 연설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부시는 8년동안 겨우 5번만 집무실 TV 연설을 했고 오바마가 마지막으로 한 것은 3년 전이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답은 인터넷/IT 기술이 가져온 혁명, TV 와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있다. 20세기 후반 TV 가 지배하던 시절에는 대통령이 TV 에 등장하면 전국민이 행동을 멈추고 대통령의 메시지를 들었다. 베이비부머 세대 미국인들은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마다 대통령의 TV 연설이 등장했다는 점을 기억한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미국인들은 TV 공중파 이외에 수많은 정보수집 채널을 갖게 되었다. 방송국 역시 대통령에게 황금시간대에 방송 분량을 주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리고 대통령 역시 집무실 책상 의자에 앉아 홀로 카메라만 바라보면서 연설하는 방식에 결코 편안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4. 월등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가진 오바마 대통령이 TV 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최측근들 역시 의견이 갈린다. 백악관 전 대변인 로버트 깁스는 “집무실에 앉아서 TV 연설을 한다는 것은 국가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커다란 의사결정을 발표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고 주장하며 선임 전략가인 Dan Pfeiffer 는 “TV 연설은 레이건 시대, 80년대 아이디어다. 확신하건대 오바마 다음 대통령들은 TV 연설을 더욱 더 적게 하게 될 것이다. 미디어 환경이 지금과 같은 추세로 계속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폄하할 따름이다. 오바마는 집무실 TV 연설 대신에 붉은 카펫이 깔린 백악관 복도를 걸어와서 East Room 입구에 서서 연설을 하는 무대형 방식을 더 선호한다. 2011년 오사마 빈 라덴 사살을 발표하던 순간처럼 말이다. 또는 메시지 내용과 연결된 장소를 찾아서 효과를 극대화하는 연설을 하는 것도 좋아한다. 오바마가 아프가니스탄 정책을 발표한 곳은 미국 군사학교 웨스트포인트였다.

5. 그러나 이런 변화에 대해 미국 ABC 방송국 워싱턴 지국에서 20년간 근무한 Robin Sproul 은 씁쓸한 평가를 내 놓는다. 대통령의 TV 커뮤니케이션이 불러일으키던 “미국은 하나의 국가라는 공동체 의식”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6. 문득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의 TV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돌이켜보게 된다. 아직까지 박근혜 대통령은 3월4일 대국민 담화로 TV에 나선 것이 유일하다.

박소령

참고: 뉴욕타임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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