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채홍의 디자인커뮤니케이션 29] 피어나고 지는 생명의 모습을 아름답게 그린 뮤직비디오 ‘moving on’

1.
영국 록 밴드 james의 신곡 ‘moving on’ 뮤직비디오를 소개합니다.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습니다.
뜨개질에 쓰는 노란색 털실만으로 사람과 사물을 표현했습니다.
환한 빛이 가득한 배경에 사그라지는 생명과 새로 태어나는 생명을 아름답게 그렸습니다.

 

 

병상에 누운 부모의 몸은 실이 풀려나가며 조금씩 사라집니다.
자식은 하늘로 풀려 올라가는 실을 애처롭게 붙잡아 내립니다.
부모는 부드러운 낯빛으로 고개를 젓습니다.
자식은 병상에 나란히 누워 마르고 앙상한 부모의 몸을 껴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실 한 올이 하늘로 올라가는 순간까지 안타깝게 지켜봅니다.

애니메이션은 죽음을 맞이하는 정적인 화면과 대비되는 새 생명이 탄생하는 역동적 화면을 번갈아 보여줍니다.

젊은 여자가 춤을 춥니다.
한순간 하늘로 뻗은 자기의 실을 잡아당기더니 두 가닥으로 쪼갭니다.
여자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잉태 과정이 뭉치고 이어지고 꿈틀대는 실로 나타납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의 실이 다 풀려 올라갈 때 여자의 품 안엔 하늘에서 내려온 실이 스르르 감기며 작은 아기로 태어납니다.

2.
무엇보다 ‘털실’ 한 가지를 가지고 이렇게 풍부한 의미와 표정을 만든 것이 놀랍습니다.
사람과 식물, 물건의 뼈대에 털실을 촘촘히 감아 형태를 만들고, 살아 있는 생명에는 실 한 가닥을 하늘로 이어 놓았습니다.
마법과도 같이 생명은 실이 스르르 감기며 내려왔다가 스르르 풀리며 하늘로 올라갑니다.
빛으로 충만한 화면과 순간순간 보풀이 살아 움직이는 노란색 털실은 음악이 흐르는 내내 부드럽고 따듯한 감성을 유지합니다.

애니메이터는 털실이 가진 시각적 의미의 층을 더 깊이 들여다봅니다.
도입부 병상 장면에서 가로로 길게 보여주는 한 가닥 실은 꼬인 내부를 펼쳐 성긴 밀도를 표현합니다.
반면, 새 생명이 잉태되는 과정의 실은 복잡하고 촘촘한 밀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미경으로 들여다 본듯한 실은 우리 몸속의 수많은 세포와 유전자처럼 보입니다.
생명은 작고 가느다란 실이 촘촘하게 묶여 이루어져 있는 셈입니다.

3.
문장 하나가 떠오릅니다.
“우주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아주 작은 이야기들로 우주는 이루어져 있다.”
The universe is not made of atoms; it’s made of tiny stories.(조셉 고든 래빗의 “The Tiny Book of Tiny Stories”에서)

털실의 가느다란 가닥 속에는 분명 수많은 이야기가 들어있을 겁니다.
사라지고 또다시 만드는 삶의 얘기들.
우리 생애는 그것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을까요?

서채홍

* 애니메이션을 만든 에인슬리 헨더슨(Ainslie Henderson)의 이력이 흥미롭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1979년 태어났다. 일찍이 밴드 활동을 했고 꽤 재능을 인정받은 모양이다. BBC 리얼리티 쇼 Fame Academy에 출현해 인기를 끌기도 했다. 2006년에 1집 앨범 Growing Flowers By Candlelight를 냈다. 애니메이터로서의 수상 이력은 2013년 제66회 영국아카데미시상식 최우수 단편애니메이션상, 2013년 제37회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특별심사위원상 외 다수가 있다. 국내엔 제천국제음악영화제(10회)에 ‘나는 톰 무디 I Am Tom Moody’로 소개되었다. 음악가 출신답게 영상과 소리의 매칭이 훌륭하다.

* 에인슬리 헨더슨의 이력과 작업에 관한 링크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eaeombin&logNo=150001176123 (음악 이력)
http://vimeo.com/ainslie (작품 보기)
http://cargocollective.com/ainsliehenderson (홈페이지)
http://www.wearejames.com/blog/ (록 그룹 제임스와 나눈 대화)
http://www.ainsliemusic.com/index2.htm (과거 음악 듣기)

[서채홍의 디자인커뮤니케이션] 인포그래픽으로 다시 보는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1. 2001년, 이메일로 퍼진 이야기

– 지금 세계에는 63억의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것을 100명이 사는 마을로 축소시키면 어떻게 될까요?

이런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메일이 한동안 세계를 떠돌았다. 2001년 4월 즈음이었다. ‘세계화’라는 담론을 100명이 사는 작은 마을의 얘기로 전환한 내용이었다. 이런 식이었다.

– 100명 중 52명은 여자이고 48명이 남자입니다.
– 30명은 아이이고 70명이 어른입니다. 어른 가운데 7명은 노인입니다.
– 90명은 이성애자이고 10명이 동성애자입니다.
– 70명은 유색인종이고 30명이 백인입니다.
– 20명은 영양실조이고, 1명은 굶어 죽기 직전인데 15명은 비만입니다
– 마을 사람 중 1명은 대학교육을 받았고, 2명은 컴퓨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14명은 글도 읽지 못합니다

백분율로 인식되는 간단한 수치가 강렬한 반응을 불렀다. 일본의 한 번역가가 이 내용을 편집해 그림을 덧붙여 책으로 묶어 냈다. 책 제목은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If the world were a village of 100 people)”. 순식간에 여러 나라 말로 번역 출간되었다. 한동안 세계적으로 화제였다.

2. 인포그래픽으로 다시 보는 “If the world were a village of 100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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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by Ng라는 디자이너가 2008년 무렵 이 내용을 여러 장의 인포그래픽으로 만들었다. 포스터와 엽서 버전 두 가지를 선보였다. 엽서는 묶음으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 모양이다. 간결하고 명확하게 정보를 전달하고 있으며, 위트 있는 표현 덕에 최근 2013년까지 여러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했다. 요즘 우리가 ‘인포그래픽’ 하면 떠올리는 벡터 이미지와 친근하고 단순한 이미지 비유가 ‘현대적(동시대적)’ 느낌을 준다. 한동안 유행하던 오래된 콘텐츠가 인포그래픽의 옷을 입고 다시 유통되고 있는 현상이 재미있다.

3. 2001년에 표현한 인포그래픽

독일 문학 번역가인 이케다 가요코가 구성한 책엔 매우 직관적이고 교과서적인 인포그래픽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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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명은 영양실조이고 1명은 굶어 죽기 직전인데 15명은 비만입니다.
이 글 왼쪽 페이지를 초록 20%(영양실조), 보라 1%(아사 직전), 파랑 64%(그 외), 빨강 15%(비만)의 면적 대비로 보여준다. 다른 페이지도 면적 대비를 사용한 인포그래픽이라 할 수 있다. 그 시절엔 이 그림을 ‘인포그래픽’이라 부르지 않았을 뿐이다.

우툴두툴한 결이 있는 종이에 크레파스로 색면을 채운 이 데이터 그림은 놀랍게도 20세기 색면추상의 대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넓기도 좁기도 한 여러 색깔의 띠가 어울려 심오한 빛을 뿜어내는 그림. 누구든 그 앞에 서면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 사랑과 증오, 종교와 구원 등등의 감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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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 가요코는 수치를 알려주는 단순한 글에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을 덧붙여 색깔과 면적, 그리고 종이와 손이 만들어낸 흔적으로 예술적 감수성까지 표현해냈다. 천천히 여러 번 읽게 만드는 매력을 가진 아름다운 인포그래픽이다.

서채홍

*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If the world were a village of 100 people)”의 원작자는 미국의 환경학자 도넬라 메도스(Donella Meadows)다. ‘세계 마을의 현황 보고’라는 신문 칼럼에 쓴 글이 네티즌 사이에 이메일로 퍼져 나갔다. 이 과정에서 마치 구전 문학 작품처럼 어떤 얘기는 빠지고 또 어떤 얘기는 덧붙여지고, 고쳐지면서 점점 일정한 모양을 갖추어 갔다. 구전되던 이야기와 데이터를 선별해 책이 나오고, 이를 기초로 만든 여러 버전의 영상도 나왔다.

그림 출처: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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