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의 미래 56] 만화 저널리즘 – 단순하게 만들어 증폭시키다

symbolia_glidden

*주: 정보 과잉의 시대에 어떤 콘텐츠로 독자를 매료시킬 것인가. 최근의 화두는 이거다. 심볼리아(Symbolia)는 이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은 것처럼 보인다. 핵심 내러티브와 만화로 독자들을 빨아들인다. 남의 일로 느껴져서 당최 관심을 갖지 않게 되는 이슈들도 만화와 스토리 형식을 취한 심볼리아를 거치면 가깝게 느껴진다. 심볼리아는 년간 11.99달러에 아이튠스 혹은 PDF파일로 구독할 수 있다. (참고: http://symboliamag.com/) 심볼리아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하다면 아래 글을 추천한다.

심볼리아*의 Sarah Mirk 리포터는 관타나모 수용소를에 대한 이미지를 새롭고 선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그리고 관타나모 수용소를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복역했던 군인의 경험담을 찾고 있었다.

(*심볼리아는 만화와 저널리즘을 합친 형태의 디지털 간행물이다.)

Mirk가 관타나모 수용소 이야기에 착수한 이유는 관타나모에 대한 보도가 정책 논의와 정책결정자들의 설전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관타나모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인간적인 충격 등은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Mirk는 만화형식이 저널리즘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윗분들이 결정하는’ 그런 종류의 이슈는 일반 사람들의 이야기주제가 될 것이었고 더 친숙해질 것이었다. 정보과잉의 시대에 아름답게 일러스트레이트된 만화는 분명한 전달력과 감성 풍부한 울림을 준다.

그렇게 탄생한 “비밀, 해제되다 (Declassified)”는 손꼽히는 성공적 스토리로 탄생했다.
휴먼인터레스트 저널리즘 아울렛 ‘내러티블리’와 정치 뉴스블로그 ‘띵크 프로그레스’에 팔렸고 프린트된 간행물로 배포됐으며 프랑스어와 스위스어로 번역됐다.

이 작업은 어떻게 하면 새로운 독자들이 복잡한 이슈에 관심을 갖게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성공적인 케이스라 할 수 있다. 만화 내러티브는 플랫폼을 넘나들 수 있으며 젊고 시각자료를 선호하는 사람들을 유인할 수 있으며 문화적 장벽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

소설 길이의 만화라고 할 수 있는 그래픽노블은 무서운 기세로 성장했다. 만화는 정말로 인기 있는 장르다.
북스캔의 2013년 보고서를 보면, 만화책의 판매율은 거의 4%가 올랐고 매출은 7% 상승했다. 종이 간행물 시장이 전반적으로 위축됐음을 감안해야 한다.

그런데 왜일까? 왜 만화가 먹히는 걸까? 답은 독자들이 컨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에 있다. 만화책은 이해를 돕는다. 그리고 빨리 읽힌다. 만화이론가이자 카투니스트인 스캇 맥클라우드는 이렇게 말한다. “단순하게 만들어서 증폭시키는 거죠(amplification through simplification).”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런 거다. 핵심 내용만 남을 때까지 껍질을 벗겨내는 것.

이미지는 핵심적이고 글로벌하기까지 하다. 이마에 줄 몇 개 그으면 걱정하는 표정을 전달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비밀, 해제되다”를 보면 우리는 스토리에 등장하는 여성의 감정에 이입하는 단계에 다다른다. 그림에서 우리는 복잡한 내용들을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논픽션 스토리텔러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은 신경과학적 측면으로도 설명 가능하다. 분명하고 감정적이며 드라마를 연상시키는 스토리는 독자들을 이입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그런 스토리들을 접하면 몸은 코티솔이 함유된 화학물질을 만들어낸다. 코티솔은 집중하게 하며 공감력을 증강시킨다. 타인을 이해하는 뇌의 영역을 자극하기도 한다.

“취재원의 이름 뒤에 따라 붙는 글로 전달되는 이야기보다 그들이 등장해서 직접 말하는 이야기가 더 인간미 있죠.” 우크라이나 야누코비치의 폭로에 대한 스토리를 만든 록산느 팔머는 말한다.

흡인력 있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꼭 디지털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 어떤 것이 있더라도 핵심적인 내러티브가 없다면 소용없다.

다양한 독자들이 공감하고 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미지와 글자들을 배열하는 것도 중요하다. 만화는 어떤 순간들과 감정들, 그리고 여백을 어떻게 배열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한 장면에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사이의 공간은 다음 장면에 무엇이 나올 것인가 상상하게 하는 공간인 셈이다. 만화에서는, 등장인물들이 말하지 않은 내용들이나 그려지지 않은 사건들이 그려진 내용과 같은 무게를 갖기도 한다.

출처: http://www.nieman.harvard.edu/reports/article/103101/The-Core-of-Story.aspx,
http://www.forbes.com/sites/deannazandt/2012/12/07/with-launch-of-symbolia-a-new-future-for-journalism/

[첫문장, 끝문장] 우연한 산보, 쿠스미 마사유키/타니구치 지로 (2000-2002년작)

* 우리나라에서도 매니아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는 동명의 만화 원작이 있습니다. 스토리작가와 만화가 두 명의 콤비로 이루어진 이 팀은 <고독한 미식가> 성공 성공 이후 두번째 공동작품으로 <우연한 산보>를 선보이게 됩니다. ‘통판생활’ 이라는 잡지에 연재한 이 만화는 주부 독자들을 대상으로 기획된 만화인지라, 30대 중반 문구 제작회사에 근무하는 남자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업사원 우에노하라 조지는 근무 중에 또는 휴일에 걸어다니면서 우연히 새로운 길, 새로운 가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비가 그친 오늘, 여러분도 ‘우연한 산보’가 선사하는 멋진 선물들을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993627_399151770190856_467385124_n

– 제가 밑줄 그은 부분들

#1.
이 작품을 연재하면서, 세가지 규칙을 만들었다.
1. 조사하지 않는다. : 관광가이드나 동네산책 매뉴얼 등 책이나 인터넷으로 미리 알아보고 나가지 않는다.
2. 옆길로 샌다: 사전에 지도를 보고 간다고 해도, 걷기 시작하면 그 때 그 때 재미있어 보이는 쪽을 향해 적극적으로 샛길로 샌다. 
3.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 시간제한을 두지 않고, 그 날 안에 정하려고 하지 말고 느긋하게 걷는다. 

#2.
산책의 비법은 천천히 걷는 것이다. 볼 일을 생각하면서 서둘러 걸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점점 더 많이 보이게 된다. 평소에 듣지 못했던 소리가 들리고, 어렴풋이 풍겨오던 향기가 코를 자극하고, 옛 기억을 상기시켜 준다. 나 같은 경우 카메라를 들고 걷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뭐 재미있는 것 없나’ 싶어 오감 레이더가 잘 발달하는 것 같다. 결국 나카노에서의 이 산책은 작품으로 그려내지 못했다. 8화뿐인 만화지만 원작을 그리기 위해 그 두 배 이상 산책을 다녀왔다. 원작을 그리기 시작하고 나서도, 사진이 부족해서 갔던 곳을 다시 한번 걸었다. 하지만 산책에 헛걸음이란 없다.
아니, 산책이란 우아한 헛걸음이다. 

#3.
저는 그 부분을 읽고, 인간이란 둘이 산책하고 싶어서 결혼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산책이라는 것은 생활의 짬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인이나 연인과 하는 산책은, 장소를 정하고 약속을 하고 만나는 것이기에, 데이트나 여행은 되지만 산책은 되지 않습니다. 거기엔 생활이 없으니까요. 좋아하는 사람과 함게 하는 일상생활에서의 짬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이, 곧 그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것이 아닐까요.
빈사 상태의 연로한 작가가 “어디 한 군데 아픈 곳이 없고, 둘이 동네를 걸을수만 있다면, 그것말고 더 바랄 것이 없다”라고 한 것은, 모든 것을 다 털어낸 최후의 산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첫문장: 제 1화
“뭐? 열쇠는 잘 채워뒀어? 하여간…만날 깜빡 하더라니. 훔쳐가 달라고 광고하는 꼴이잖아.”
“그렇지만 보통 그 안까지 들어와서 훔쳐가진 않지…”
“정말… 당신은 헐렁해서 문제야. 경찰에 신고는 했어?”
“…내일 하려고”
“왜 바로 안하는데?”
“…방범 등록을 안 해놨거든…”

– 마지막 문장: 제 8화
“어머”
“당신 어떻게 여기 있어?”
“얘기 했잖아. 오늘은 공개강좌가 있다고”
“아 그랬지.”
“당신은?”
“요 앞 호텔까지 외국손님을 바래다주고 오는 길이야”
“이런 우연도 있네”
“버스도 좋지만 역까지 걸어갈까?”
“응 좋아. 걷자. 걷자! 있잖아. 메지로 역 건너편에 엄청 맛있는 츠게멘 가게가 있대. 안 가볼래?”
“응?”
“왜? 당신이 좋아할만한 가게야.”
“응.”
“왜? 뭐 먹었어?”
“아. 아니야. 가자.”

박소령

출처: 대원씨아이, 한나리 역, 2012년 1판 1쇄

[첫문장, 끝문장] 미생(未生) – 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 윤태호 (2012-2013년작)

“회사원들을 만나보니 ‘내가 지금 대단히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을 못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회의감에 빠지고, 자괴감에 눌린다. 사람은 ‘내가 없으면 안 되는 일’을 했을 때 충족감을 느낀다고들 하잖나. ‘미생’은 눈에 띄지 않은 작은 일이라도 개개인의 역할을 기반으로 회사가 굴러간다는 점을 강조한다. 회사원이라면 적어도 업무를 보는 순간에는 어느 누구도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없다는 소박한 접근이 공감대를 형성한 것 같다.
– 윤태호, 7월 3일자 중앙일보 인터뷰 중에서

1. 전문 만화, 인생 만화의 신기원을 연 미생이 마감된다고 한다. 그래서 골랐다. 끝문장은 아직 없다. 있다 해도 스포일러가 될 테니 당분간 못 쓸 것이다.

2. 박치문의 기보해설은 탁월하고 아름답다. 마치 전쟁을 치르는 장수 곁에 선 시인같다. 만화와 함께 기보를 읽는 재미를 놓치지 마시길 권한다. 바둑을 둘 줄 몰라도 가능하다.

3. 7월3일이다. 한 해의 반이 갔고 새로운 반절이 시작되었다. 스스로의 일에 확신을 가져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4. 누구나 아직 살아남지 못한 자다. ‘어제 걸어온 길이 다르고, 오늘 걸어가는 길이 다르며, 내일 걸어갈 길이 다르다.’

유민영

10190_611923558842109_1885938821_n

– 첫문장: <착수>
텅 빈 바둑판은 요염하게 빛나고 그 위로 폭풍전야의 정적이 흐른다.
외나무다리에 선 승부사들은 묻곤 했다. 그곳 망망대해의 어디에
나의 삶이 존재하는가. 이제 나는 칼을 품고 대해로 나가려 한다.
나는 과연 살아 돌아알 수 있는가.
두 적수는 무심한 눈빛으로 판을 응시한다.

(기보해설 : 박치문)

출처: 위즈덤하우스, 2013년 초판 7쇄

[첫문장, 끝문장] 슬램덩크, 이노우에 다케히코 (1990년-1996년작)

* 주: 드디어 금요일입니다. 그래서 “슬램덩크” 를 골라봤습니다. “내 인생의 만화” 로 이 만화를 꼽으시는 분들이 많으실텐데요. 첫장면을 기억하시나요?

1012300_606155999418865_223507123_n

– 첫문장: <1권-#1 강백호> 미안해, 백호야. 나, 사실 농구부 경민이를 더 좋아해.

– 끝문장: <24권-#10 북산고등학교 농구부> 물론! 난 천재니까.

출처: 대원씨아이, 완전판 프리미엄 2013년 초판 12쇄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신문만화의 고군분투

장도리

1. 6월 19일 자 경향신문 네 칸 만화 ‘장도리’가 재밌다. 네 칸 모두 사람과 풍경은 같고 대사가 바뀌고 인물의 표정과 동작만 바뀐다. 네칸 만화 ‘장도리’는 대체로 비유나 표현이 직설적일 때가 많은데 이날 표현은 은근한 묘미가 있다. 두 번째 칸까지 국민의 항의에 대통령은 할 말이 없어 진땀만 뺀다. 세 번째 칸에서 대통령은 사람들에게 ‘난데없이’ 문제를 낸다. 오른손을 들어 사뭇 진지하게 명한다. 상황은 반전된다. 갑자기 국민은 혼란에 빠진다. 그게 뭐더라? 진땀을 흘리며 손가락으로 머리를 긁고, 스마트폰(?)을 꺼내 그게 뭔지 찾는다. 대통령은 흐뭇하다. 우후(음표). 팔짱 끼고 느긋하게 내려다보고 있다.

2. 마지막 칸에서 만화는 대통령이 현재의 정국에서 예민한 문제에 답하지 않고 ‘창조경제론’으로 국면을 전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사람들은 도대체 ‘창조경제’가 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것 또한 보여준다. 그런데도 만화 속 대통령은 흐뭇하다. 여러 가지 여운을 남기는 만화다.

3. 한 칸이나 네 칸 안에 그날그날의 정치·사회를 비평하는 신문만화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하나의 공식처럼 자리 잡고 있던 두 가지 형식의 만화가 주요 일간지에서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는다. 신문만화에 대한 독자들의 수요가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고바우 영감(김성환)’, ‘두꺼비(안의섭)’, ‘나대로 선생(이홍우)’, ‘왈순아지매(정운경)’로 이어지는 네 칸 만화의 전통을 현재는 ‘장도리(박순찬)’가 홀로 이어가고 있다. 신문만평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했던 ‘한겨레 그림판’의 박재동 화백 이후로 장봉군(한겨레), 김용민(경향) 두 화백이 힘겹게 그 명맥을 잇고 있다.

4. 흔히 ‘촌철살인’이라고 비유하는 신문만화의 역할을 어쩌면 트위터 같은 매체가 대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짧은 글과 덧붙인 이미지 하나 정도로 그날그날의 정치·사회를 효과적으로 비평하는 사람들은 무수히 많고, 그 메아리를 사람들은 열심히 주고받는다. 신문만화는 전통적인 매체인 신문에서 매우 상징적인 존재다. 시간이 모자라 신문을 휘리릭 넘겨 볼 때도 사람들은 언제나 만화는 꼭 보고 넘어간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사람이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선별해서 뉴스를 접하게 되니 여간 재밌는 만화가 아니고서는 독자들과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게 현실이다. 신문만화는 다른 형식과 다른 표현을 고민해야 하는 힘든 시점에 와있다.

서채홍

그림 출처: 경향신문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