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페인과 커뮤니케이션] 오바마의 연두교서 전략2 – 연설이 끝난 후에도 연설을 계속하라.

1. 미국시간 20일 저녁 6:30분, 오바마의 신년 의회 연설을 2시간 반 앞두고 백악관은 온라인을 통해 오바마의 연설문을 전격 공개했다. 관례적으로 엠바고 조건으로 연설 직전에 언론에 배포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국민들에게 먼저 직접 공개하는 것은 처음이다. 사전공개에 따른 모든 위험을 감수하며 연설문을 게재한 이유는 하나다. 연설문을 미리 (혹은 실시간으로 함께) 보고, 마음에 드는 내용을 주변에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퍼나르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2. 미리 준비한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백악관에서 준비한 연설 중계 영상은 반분할 화면으로 편집되어 연설 내용과 함께 화면 오른쪽에는 중요 키워드, 인포그래픽, 도표 등 다양한 자료 화면이 시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나타난다. 유튜브에 올려 공유하기에 손색이 없다.

3. 이날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 만만했다. 현 상황에 대해 ‘위기의 그늘은 지나갔다’고 정의했고, 앞으로 미국 중산층 경제를 되살리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부자증세를 예고하며 금융 재벌 등 사회 기득권에 대해 선전포고를 보냈다.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 개혁안 싸움에서 공화당을 불리한 위치로 내려 앉히려는 것이다.

4. 결과는 백악관이 기대한 대로다. 국정연설이 끝난 직후 CNN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81%가 2015년 연설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시장조사업체 닐슨에 따르면 국정연설 중 트위터에는 실시간으로 관련글 260만건이 올라왔으며, 오바마 대통령의 계정에 반응을 보내는 글도 4만4000건에 달했다고 한다.

5. ‘우린 아직 안끝났어요(We’re Not Finished Yet)’
오바마의 신년 의회 연설이 끝나고 백악관 홈페이지에 올라온 멘트이다. 이 멘트 밑으로는 SNS 공유를 기다리는 연설 주요 메시지들이 감각적인 이미지로 디자인되어 정렬되어 있다. 2015년 백악관은 미 헌법이 규정한 ‘State of the Union’의 의무를 ‪#‎SOTU라는‬ 새로운 형식의 커뮤니케이션으로 바꾸어 놓는데 성공한 것이다.

 

김성은(캠페인 컨설턴트)

[말과글] 네가 어떤 사람인지 세상에 보여주라

* 5월19일 동아일보 <횡설수설>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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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영의 ‘나는 이렇게 쓴다’- 글쓰기의 시작을 위한 노트 14] 글의 세계에서는 백화점보다 전문매장이 경쟁력이다.

 

독자는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면서
무언가를 배우거나 얻고자 한다.
반대로 작가는 글을 쓰면서
자신이 알거나 취재한 사실들을 담으려고 노력한다.
특히 정치인들은 연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의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국회의원들은 대정부질문을 하게 되면
출석한 장관들 모두를 상대로 질문을 하려고 한다.
자신의 모든 관심사를 제한된 시간에 쏟아내려고 한다.
대통령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이 추진하고 있는 모든 정책을 설명하려고 한다.
모든 계층을 상대로 최소한 한마디라도 전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연설이나 글이 백화점식이 되고 만다.
백화점식 연설의 가장 큰 단점은
연설 후에 뚜렷하게 기억나는 대목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2007년 초 노무현 대통령의 신년연설이 그랬다.
대통령이 욕심을 많이 냈다.
마지막 신년연설임을 의식하여 많은 내용을 담으려 한 것이
오히려 산만해지면서 의미 있는 메시지 전달에 실패하고 말았다.
평소처럼 대중연설 스타일로 하면
특정한 주제에 대해 비교적 깊이 설명하고 다른 주제들은 건너뛰게 된다.
그러면 청중들은 특정 주제에 대해 강한 메시지를 전달받게 된다.
후보수락연설, 취임사, 신년연설, 광복절 경축사 등은 주요계기의 연설이다.
관심이 집중되기 때문에 대통령도 내용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게 된다.
상대적으로 연설 시간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
주요 계기의 연설에서 명연설이 나오기 힘든 이유이다.

좋은 글, 좋은 연설이 되려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A friend to everybody is a friend to nobody”란 말이 있다.
글의 세계에서는 백화점보다는 전문매장이다.

윤태영

[윤태영의 ‘나는 이렇게 쓴다’- 글쓰기의 시작을 위한 노트 9] 글과 그림은 통한다. 글에도 가선을 그어보자.

인물 스케치를 할 때 여러 가지 가선을 활용하게 된다.
사람 얼굴을 묘사하는 경우,
머리 한가운데에서 코를 통과하는 중심선을 세로로 그린다.
이 중심선 위에 눈, , 입이 위치할 곳에 각각 가로로 보조선을 그린다.
일종의 기준이 되는 선이다.
이 가선에 따라 눈, , , 머리카락 등을 그려 넣으면 한결 수월하다.
스케치가 완성되면 중심선이나 보조선을 지우개로 지운다.
글을 쓰는 것도 스케치와 마찬가지다.
전체 글을 관통하는 큰 흐름을 먼저 생각한다.
일종의 중심선이다.
여기에 각각의 내용을 담을 항목을 미리 정한다.
말하자면 머리카락, , , 입이 들어갈 위치를 정해두는 것이다.

지방선거 출마자의 연설문을 쓴다고 가정하자.
전체를 관통하는 흐름은 출마의 이유일 것이다.
선거 후반이 되면 공약이 키워드가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이것이 얼굴로 치면 세로 중심선에 해당될 것이다.
이제 각 내용을 담을 항목을 구분해 놓는다.
1) 인사, 2) 자기소개, 3) 출마 이유, 4) 자신의 강점, 5) 지역공약, 6) 지지호소
대체로 위와 같이 될 것이다.
이렇게 구분해놓으면 내용이 뒤죽박죽 섞일 염려가 없다.
한 항목에 지나치게 많은 내용이 담기고,
다른 항목엔 내용이 부족해질 염려도 없다.
눈과 입의 크기가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없어지는 것이다.
연설문이 다 완성되면
보조선을 지워 그림을 완성하듯이 항목 표시를 지워버리면 된다.
때로는 연설자의 시간 배분을 위해서 남겨둘 수도 있다.

윤태영

[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4] 뺄 것이 없을 때까지 줄여라

다이어트 해야 할 것은 살만이 아니다.
– 글은 짧을수록 좋다

“할 말이 별로 없으면 짧게 하는 것으로도 한몫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좀 더 간결하게 다듬어 보십시오.”
<2005년 11월 APEC 정상회의 공식 만찬사>

“가급적 줄일 수 있으면 더 줄여주기 바랍니다. 핵심이 없이 지루한 글은 짧은 것만 못합니다. 길이를 줄이는데 망설일 일은 아닙니다.”
<2005년 12월 말레이시아 경제인 오찬 연설문>

“짧은 글일수록 압축된 어휘와 간결한 문장으로 써야 힘이 생깁니다. 다시 한 번 다듬어 주시기 바랍니다.” <2006년 1월 신년사>

“내용이 너무 길면 긴장감을 잃으면서 지루하고 문장이 어려워집니다. 듣다가 앞의 얘기를 기억하지 못할 정도가 된다면 문제입니다.”
<2006년 11월 제43회 무역의 날 기념사>

연설비서실에서 올린 초안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코멘트다.
모두 줄일 수 있으면 더 줄이라는 주문이다.
글쓰기의 기초에 대한 지적이다.
아직도 이 내용을 보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렇다.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전할 수만 있다면 글은 짧을수록 좋다.
글이 길다고 감동이 더 있고, 더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은 아니다.
광고 카피처럼 때로는 한 문장, 단어 하나가 긴 글보다 더 힘 있고 감동적인 경우가 많다.
오히려 글이 길면 초점이 흐려지고, 읽는 이로 하여금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렵게 할 공산이 크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저런 말을 늘어놓다 보면 오해와 억측을 나을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언론에 발표하는 성명서나 어떤 사안에 대해 해명을 하는 경우에는 각별히 유념해야 한다.
글의 초점을 잘못 해석하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당신의 글에 이런 내용이 있지 않느냐?”고 꼬투리를 잡아도 할 말이 없다.

굳이 이런 악의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읽는 사람의 수고와 시간을 배려하는 것은 중요하다.
별다른 감동도, 유익도, 재미도 없는 글을 긴 시간 읽게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지 않은가.

노무현 대통령은 늘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함축하는 한 단어, 한 문장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예를 들어, 인사 청탁은 안 된다는 단호함을 보이기 위해 “인사 청탁하면 패가망신한다.”는 말을, 부동산 투기 근절 의지를 전하기 위해 “강남불패면 노무현도 불패다.”라고 말했다.

독자나 청중은 긴 글이나 장황한 말 속에서 한 단어, 한 문장만 기억한다는 게 노 대통령의 지론이다.
글을 쓸 때는 바로 그 문장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한 문장을 어떤 때는 ‘표어’라고도 했고, ‘카피’, ‘명제’라고도 했다.
바로 이 표어, 카피, 명제를 놓고 늘 고심했다.

짧은 글쓰기는 긴 글보다 결코 쉽지 않다.
짧은 글 속에 모든 것을 얘기해야 하고, 또한 핵심을 찔러야 하기 때문이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은 단 266개 단어였다.
이 자리에 함께 했던 당대 최고의 웅변가 에드워드 에버렛은 2시간 가까운 연설을 했다.
그야말로 ‘연설하고 있네.’를 몸소 보여준 것이다.
결국 아무도 에버렛의 말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아는 얘기 중에, 더 극단적인 사례도 있다.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가 출판사에 원고를 보낸 후 반응이 궁금해서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
“?”
이에 대해 출판사에서 답을 보내왔다.
“!”
그 결과로 <레미제라블>이 탄생했다.

혀가 짧아 고생했던 처칠도 짧은 연설로 유명하다.
“포기마라, 포기마라, 절대 포기하지 마라.”
1941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단 세 마디만 했지만, 아직도 명연설로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짧은 연설을 자주 했다.
2005년 울산에서 열린 제86회 전국체육대회
준비해간 축사에는 “2010년까지 스포츠·레저산업을 세계 10위권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등의 장황한 비전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가보니 야간 개회식에 열광하는 수 만 명의 청중과 선수단이 보였다.
과연 그들의 귀에 거창한 5년 후의 비전이 들릴까?
그런 얘기를 들을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듯했고, 그런 말을 할 상황도 아니었다.

대통령은 즉석에서 이렇게 연설하고 끝냈다.
“선수단 여러분, 최선을 다하십시오. 정정당당하게 승부하십시오. 그러면 모두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이 짧은 연설 안에 대통령은 당시 정치권과 경제계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까지 담았다.
지루하고 긴 연설을 예상했던 청중들의 반응이 뜨거웠던 것은 물론이다.

2005년 제60회 경찰의 날 축하행사 자리
환갑을 맞은 터라 야외에서 성대한 축하행사가 계획됐다.
그런데 갑작스레 폭우가 쏟아졌다.
위험을 무릅쓰고 시범을 보인 여경들이 추위에 떨고 있었다.

대통령의 연설 차례가 됐다.
역시 60주년인지라 경찰에 대한 당부를 담은 긴 연설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원고를 덮었다.
그리고 말했다.
“경찰관이라는 사실이 큰 자랑과 긍지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 경찰에게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냅시다. 경찰의 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어떤 긴 연설보다 경찰에 대한 대통령의 따뜻한 애정이 녹아있었다.

이에 반해 김대중 대통령은 긴 연설을 선호했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성의이자 예의라고 생각했다.
정책 등에 대해 첫째, 둘째, 셋째…하는 식으로 소상하게 설명하는 쪽을 택했다.

어느 쪽이 더 좋은 연설인지, 우열이 있을 수 없다.
수사학의 대가인 키케로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글은 쓰는 사람의 스타일에 따라, 글의 성격에 따라, 그리고 글을 읽는 대상이 기대하는 바에 따라 길 수도 짧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있다.
군더더기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글을 쓸 때는 더 넣을 것이 없나를 고민하기보다는 더 뺄 것이 없는지를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한다.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글이 좋은 글이다.
군살은 사람에게만 좋지 않은 게 아니다.

강원국 (라이팅 컨설턴트, 객원 필진)

[첫문장, 끝문장] 수사학 – 말하기의 규칙과 체계, 키케로

키케로

0. 1969년 닉슨 미국대통령이 프랑스를 방문했다. 드골 프랑스대통령은 만찬이 열린 엘리제궁에서 환영연설을 했다. 닉슨은 그 연설에 감명 받았다. 내용과 표현, 단어선택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연설은 원고가 없이 즉흥적으로 이뤄졌다. 닉슨 일행 중 한 사람이 드골에 물었다. “원고도 없이 어떻게 그렇게 훌륭한 연설을 할 수 있습니까?” 드골은 대답했다.

“사실 미리 써놓은 원고를 밤새 외운 겁니다. 즉흥연설이 어디 있겠습니까.”

인간은 언어로 소통한다. 생각은 언어를 통해서 정리되고, 언어로 전달된다. 리더들의 말과 글은 더 중요하다. 특히 공식석상의 말 한 마디, 한 단어는 신중하게 엄선된다. 로마의 위대한 수사학자였던 키케로의 연설에 대한 저술은 말을 잘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봐야 할 고전이다. 그는 연설의 영역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눴다. ‘즐거움’을 위한 연설, 정책설득을 위한 연설, 그리고 법정에서의 연설이다. 각각 연설에 대한 핵심 문장을 소개한다. 현재에도 가지는 함의가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을 듯하다.

1. 즐거움을 위한 연설

청중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연설해야 할 경우, 연설의 내용을 어떤 순서로 구성해야 하는가에 대한 방법은 다양하다. 연설 시기의 특성을 고려해야 하고, 어떤 화제를 올려야 할지 따져야 한다. 예를 들어 삼단 논법과 같이 소주제에서 대주제로 넘어가거나 반대로 큰 것에서 세세한 것의 순서로 말할 수도 있다. 혹은 세세한 것을 말하다가 큰 주제를 던지거나 단순한 것들을 나열하다가 복잡한 것을 설명하기도 하고, 명백한 사실을 말하다가 불명확한 것을 묻기도 하고 신빙성 있는 내용들을 말하다가 믿기 힘든 것을 더하기도 해야 한다. 변칙을 주어 연설에 흥미를 더하는 것이다. 이른바 장식(수식)에 해당하는 것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

2. 정책설득을 위한 연설

서론은 짧아야 한다. 때에 따라 서론을 생략해도 된다. 청중은 자신의 실익에 관련된 부분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사실을 늘어놓아서도 안 된다. 사실은 과거나 현재 사안에 속한다. 설득은 미래에 대한 것이다. 정책설득을 위한 연설은 신뢰와 감동을 일으켜야 한다.

3. 법정에서의 연설

원고가 말하는 방식과 피고가 말하는 방식은 다르다. 원고는 먼저 사건의 경과를 추적하고, 개별 논거들을 명확하고 신속하게 내놓고 날카롭게 결론 내려야 한다. 원고의 주장은 증거자료들로 보강되어 단단해져야 한다. 핵심사항을 중심으로 각각의 사안과 주장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원고는 감정에 호소할 줄 알아야 한다. 특히 연설을 마무리할 때 판관의 감정을 격정적으로 자극해야 한다. 마무리가 아닌 다른 부분에서도 때때로 감정에 호소해야 한다. 법정연설의 목적은 재판관을 분노케 하는 것에 있다.

정리 김정현

출처: 키케로, <수사학>, 도서출판 길, 2012년 제1판 8쇄.

[정치 커뮤니케이션] 케네디 대통령 재임기의 침묵을 떠올리자 – 대통령의 연설에 대한 케네디의 생각

케네디 대통령의 믿음

케네디 대통령의 믿음

0. 11월 22일이면 존 F. 케네디 서거 50주기다. 미국에서는 케네디 암살의 미스터리를 다룬 뉴스들이 올해도 어김없이 보도되고 케네디와 그의 통치를 조명한 서적들이 출간되는 등 분주한 모습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스피치라이터였던 제프 셰솔(Jeff Shesol)이 케네디와 관련한 글을 뉴요커에 기고했다.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정치인에 대한 갈증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비슷한 것 같다.

1. 1962년 8월 케네디 재임기, 뉴욕타임즈는 75명 역사학자들이 평가한 역대 대통령들의 평가 결과를 보도했다. 케네디는 기사를 읽고 “놀라움을 표했다.” 우드로 윌슨과 테오도르 루즈벨트의 높은 순위 때문이었다. 그는 윌슨이 적어도 멕시코에 대한 내정 개입, 제1차 세계대전 개입 결정등 적어도 두가지 재앙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흥미로웠던 점은 그의 평가 기준이 ‘정치적 교화’보다 ‘확실한 성취’에 있었다는 점이다. 목표에 대한 성취 없이 교화에 힘쓰는 윌슨, 루즈벨트는 제임스 포크, 해리 트루먼같은 실질적 성취를 이룬 이들보다 낮게 평가되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2. “말은 많았으나 성취한 것은 적다.” 흥미로운 역설은 이런 그의 비판이 그의 재임기에 대한 비판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다. 이는 분명히 잘못된 사실이다. 케네디의 업적은 내부적(미국 평화봉사단, 우주개발 프로그램)으로도 외부적(핵전쟁 위기 탈출)으로도 명확했고, 종교적인 관용부터 공공영역 전반의 공적인 사고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점은 과소평가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된다. 하지만 그의 사후 50주기, 그는 그의 성취보다 그의 말로 기억되고 있다. 케네디 스피치라이터였던 테드 쇠렌센(Ted Sorensen)은 전후 냉전기, 어떤 인물의 단어와 경구들도 케네디의 것만큼 강한 국가적 기억을 남길 순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의 지적은 상징적이다. 케네디에 비할만한 유일한 커뮤니케이터로 평가받는 로널드 레이건의 스피치라이터들은 그들이 작성한 문구에 대해서도 같은 평가를 요구할 지 모른다. 하지만 레이건의 사상은 오래 지속되었지만, 그의 문구들은 ‘단명’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3. 우연히 이뤄지는 건 없다. 케네디는 정치 입문 초기 명연설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초기 스피치라이터 중 한 명은 “케네디가 어떤 원고라도 그 생명과 리듬을 말려 죽여버린다.”고 불평했을 정도다.) 하지만 그는 10년 이상 부지런히 노력했다. 윈스턴 처칠의 연설을 분석했고, 보이스 코치의 컨설팅을 받았다. 그는 연설에 대한 가르침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쇠렌센이 그에게 준 많은 명연설문들을 모두 읽고, 활용을 위해 인상적인 구절을 적곤 했다. 정치적 연설의 힘은 그에게 자명한 것이었다.

4. 하지만 그에게 연설은 내재되었다가 주문에 의해 발현되는 힘이 아니었다. 케네디는 연설이 ‘올바른 단어들을 이용해 물을 와인으로 바꿀 수 있는 연금술’과 같다는 생각을 믿지 않았다. 대신 연설이 ‘실천의 선도자’라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는 어떤 일을 행할 때까지 무엇이라도 말하는 데 싫증내지 않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는 ‘수다’에 불과할 뿐이었다. 이는 대중을 지루하게 할 뿐 아니라 그에 대한 의심을 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단어 그 자체론 충분치 않습니다.” 케네디는 암살로 인해, 연설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댈러스에서의 연설에서 이를 말할 예정이었다.

5. 오늘 날 케네디는 고대 유물처럼 보인다. 최근의 대통령들은 루즈벨트처럼 너무 많이 말한다. 그들은 연설하고, 트윗하고, 국제 회담, 의회의 협상, 문화 행사, 국가 기념일 등에 대해 하루도 빠짐없이 논평한다. 2011년 10월, 오바마 대통령은 1985년 슈퍼볼 챔피언 시카고 베어스와 2011년 NCAA 여자농구 챔피언 텍사스 A&M Aggies를 찬양했고, 스티브 잡스와 무하마드 카다피의 죽음에 대한 논평을 했고, 레이프 에릭슨 데이(Leif Erikson Day)와 미국 캐릭터 기념주간(National Character Counts Week)을 다시 한 번 선언했다. 그리고 투나잇쇼(The Tonight Show)에 출현했다. 이 모든 것이 ‘얘기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많은 예들 일부다. 이는 현 대통령을 힐난하기 위함이 아니다. 내가 연설문을 작성했던 빌 클린턴과 케네디의 연간 연설문 양을 비교해 보자. 1962년 케네디는 목차와 어펜딕스를 제외하고 903페이지를 채웠다. 1994년 이는 두배가 되었다. 무려 2159페이지에 달했다. 물론 클린턴은 오바마처럼 24시간, 7일 체제에서 재임했다. 케네디는 8시간, 5일 근무의 이점을 누렸다. 대통령들에게 침묵을 지키는 것은 사치다. 만약 그랬다간 반대파가 그의 공백을 차지할 것이다.

6. 우리는 연설과 실천의 연결을 약화시켜 왔다. 역사학자 아서 슐레신저(Arthur Schlesinger)는 내게 “정치 연설은 ‘저급 수사학’의 형태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의 의도는 연설의 질이 케네디 시대보다 떨어졌다는 것이 아니었다. 대통령들의 말이 많아지며 역설적으로, 그들의 말의 무게가 떨어졌음을 의미했다. 11월 22일은 케네디의 서거일이다. “케네디가는 울지 않는다.”라고 그의 일가가 말했었던 것 같이 우리도 울지 말자. 대신 그 시대의 다른 어떤 것을 불러일으키자. 케네디의 억양과 명문대신 의미있는 순간, 잠시 침묵을 지킴으로써 실질적 성취 위에 놓여있는 진정한 ‘통치의 생각’에 다가서자.

이현동

출처: 뉴요커 링크

[커뮤니케이션 단신] 미국 대통령들의 TV 연설 변천사 – 무엇이, 왜 바뀌었나?

1. 공중파 황금시간대에 편성된 정규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화면에 등장하는 한 사람이 있다. 국기와 사진들을 등뒤에 두고 자신의 집무실 책상 의자에 앉아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양팔로 제스처를 취해가면서 말을 한다. 그는 미국 대통령이다.

Screen shot 2010-06-15 at 7.30.44 PM
2. 미국 대통령이 공중파를 통해서 국민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한 역사는 TV 의 역사와 일치한다. TV 로 연설을 한 첫번째 대통령은 트루먼 대통령이었다. 1947년 당시 미국에는 겨우 TV 가 4만 4천대 밖에 없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그의 첫번째 TV 연설로 미국 국민들에게 세계 2차 대전이 막 끝난 유럽을 도울 수 있도록 음식을 절약하자는 연설을 했다. 1950년 전체 가구의 9% 만이 TV 를 가지고 있었지만 1960년에는 87% 로 급증했다. 사람들의 통념과 달리, 당시 대통령이었던 아이젠하워가 “첫번째 TV 대통령” 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케네디가 아니라) 아이젠하워는 1957년, 미국 남부 아칸소주 리틀록에서 백인들만 다니던 고등학교에 흑인 고등학생 9명이 같이 다닐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치안유지를 위해 군대를 파견했다. 그리고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와 자신이 이 결정에 대해 얼마나 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국민들에게 더 직접적으로 다가가기 위해서 TV 연설을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 후 미국 역대 대통령 중 가장 훌륭한 ‘TV 커뮤니케이터’ 였던 레이건은 8년 재임기간 중 29번이나 TV 연설을 했고 TV 를 싫어했던 닉슨도 5년 동안 22번이나 연설을 했다.

3. 그런데 2000년대 이후 미국이 맞이한 두 명의 대통령, 부시와 오바마는 모두 집무실에서 진행하는 TV 연설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부시는 8년동안 겨우 5번만 집무실 TV 연설을 했고 오바마가 마지막으로 한 것은 3년 전이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답은 인터넷/IT 기술이 가져온 혁명, TV 와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있다. 20세기 후반 TV 가 지배하던 시절에는 대통령이 TV 에 등장하면 전국민이 행동을 멈추고 대통령의 메시지를 들었다. 베이비부머 세대 미국인들은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마다 대통령의 TV 연설이 등장했다는 점을 기억한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미국인들은 TV 공중파 이외에 수많은 정보수집 채널을 갖게 되었다. 방송국 역시 대통령에게 황금시간대에 방송 분량을 주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리고 대통령 역시 집무실 책상 의자에 앉아 홀로 카메라만 바라보면서 연설하는 방식에 결코 편안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4. 월등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가진 오바마 대통령이 TV 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최측근들 역시 의견이 갈린다. 백악관 전 대변인 로버트 깁스는 “집무실에 앉아서 TV 연설을 한다는 것은 국가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커다란 의사결정을 발표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고 주장하며 선임 전략가인 Dan Pfeiffer 는 “TV 연설은 레이건 시대, 80년대 아이디어다. 확신하건대 오바마 다음 대통령들은 TV 연설을 더욱 더 적게 하게 될 것이다. 미디어 환경이 지금과 같은 추세로 계속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폄하할 따름이다. 오바마는 집무실 TV 연설 대신에 붉은 카펫이 깔린 백악관 복도를 걸어와서 East Room 입구에 서서 연설을 하는 무대형 방식을 더 선호한다. 2011년 오사마 빈 라덴 사살을 발표하던 순간처럼 말이다. 또는 메시지 내용과 연결된 장소를 찾아서 효과를 극대화하는 연설을 하는 것도 좋아한다. 오바마가 아프가니스탄 정책을 발표한 곳은 미국 군사학교 웨스트포인트였다.

5. 그러나 이런 변화에 대해 미국 ABC 방송국 워싱턴 지국에서 20년간 근무한 Robin Sproul 은 씁쓸한 평가를 내 놓는다. 대통령의 TV 커뮤니케이션이 불러일으키던 “미국은 하나의 국가라는 공동체 의식”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6. 문득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의 TV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돌이켜보게 된다. 아직까지 박근혜 대통령은 3월4일 대국민 담화로 TV에 나선 것이 유일하다.

박소령

참고: 뉴욕타임스, 링크

[저널리즘의 미래 3] 유투브, 무명 주 상원의원을 전국구 스타로 만들다. – “우리는 더 이상 뉴스 채널이 필요없다. 왜냐하면 유투브가 있으니까!”

1. 지난주 금요일, 태평양을 건너 한국 뉴스에도 널리 보도된 화제의 인물이 있다. 미국 텍사스주 상원의원 웬디 데이비스다. 그는 무려 12시간동안 의회 단상에 서서 연설을 했다. ‘필리버스터’ 라고 불리는 이 행동은 미국 의회에서 인정하는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연설이다. 텍사스주 의회 필리버스터 규정상 그는 앉지도, 기대지도, 먹지도 못하고 화장실도 못 가면서 12시간동안 쉬지 않고 마라톤 연설을 했다. 민주당 소속 데이비스 의원이 필리버스터를 한 이유는, 공화당 의원들이 발의한 더 엄격해지고 보수적인 낙태금지 법안통과를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2. 필리버스터를 하는 의원은 미국에서 많지도 않지만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데 왜 데이비스 의원만 이렇게 화제가 되었을까?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금발머리 백인 여성이면서 ‘싱글맘’ 이라는 어려움을 겪은 개인 스토리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핵심은 유투브 정확히는 유투브의 생중계 스트리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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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몇달 전, 텍사스 트리뷴이라는 비영리 언론은 텍사스주 의회를 촬영하는 카메라 화면에 대한 스트리밍 권한을 얻었다. 그리고 이 신문사는 의회의 법안통과 과정 화면을 유투브 채널에 연결해서 생중계 스트리밍을 하기 시작했다. 이 선택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었다.
데이비스 의원의 필리버스터 장면은 자정을 넘을 무렵 무려 182,000명이 유투브로 보고 있었다. 이 숫자는 MSNBC (* 주: 미국의 진보적 성향의 케이블 뉴스채널) 시청자 수와 수준이다. 유투브로 생중계된 필리버스터는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너 이건 꼭 봐야해!” 라는 멘트와 함께 급속도로 알려졌고 “StandWithWendy” 와 같은 트위터 해시태그도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필리버스터가 끝난 다음날 아침, 그리고 그 후 주류 언론들과 뉴스 채널들은 이 소식을 받아서 연달아 보도했다. 그러나 “왜 케이블 뉴스 채널이 이런 걸 생중계하지 않는 것인가?” 라는 시청자들의 불만이 폭주한 다음이었다. 단숨에 전국구 스타가 된 데이비스 의원은 미국의 3대 공중파 방송국의 뉴스 프로그램에 모두 출연했다. 그리고 텍사스 트리뷴 신문사는 5일만에 미국 37개 주에서 3만 7천불의 기부금을 받았다. 전국적 관심을 받고 있다는 의미다.

4.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 (Occupy Wall Street) 시위를 필두로 터키, 브라질, 이집트 등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시위에 대한 유투브 생중계 스트리밍은 소셜미디어 상에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10년간 ‘온라인 동영상’은 바이럴을 위한 최고의 도구 중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 시대는 ‘생중계 스트리밍’ 이 바이럴의 대표적 수단으로 부각되고 있다.
유투브의 트렌드 매니저 Kevin Allocca 는 “텍사스 트리뷴 같이 유투브를 사용해서 지역 뉴스를 전국적 화제로 만드는 것은 훌륭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례는 앞으로 더 많이 나타날 것” 이라고 전망했다. 저널리즘 스쿨 교수인 Andrew Lih 는 텍사스 트리뷴에 대해 “의회 촬영 동영상은 이미 존재했던 것이다. 이 영상을 사람들이 몰려있는 유투브 같은 곳에 연결한 것이 대단한 것이다. 단순한 아이디어지만, 파워풀하다” 고 설명했다.

5. 미국 C-Span 이라는 케이블 채널에서는 국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장면을 생중계한다. 이 덕분에 미국 시민들은 자신이 뽑은 국회의원들이 어떤 법안에 찬성을 하고 반대를 하는지, 어떤 발언을 하고 언제 박수와 야유를 보내는지 모두 관찰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주 의회나 시 의회에서 무슨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투명하게 공개, 중계되는 과정은 부족한 편이다. 50개 주 중에서 약 12개 주는 동영상 없이 오디오 생중계 스트리밍만 제공한다. 대부분의 주들은 동영상을 제공하지만 생중계 스트리밍은 거의 없다. 이번 텍사스주의 경우에는 주의회 홈페이지에서 동영상 생중계 스트리밍을 제공하긴 했지만, 유투브보다 인터넷 사용자가 접근하기에는 매우 뒤떨어진 곳이었다.

6.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50개주 의회 전원이 오디오 생중계 스트리밍은 하고 있다. 시간과 의지가 있다면, 누구라도 접속해서 의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들어볼 수 있다는 뜻이다. 주 의회 생중계 스트리밍 확산에 노력하는 한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시민이라면 정부가 어떻게 일하는지 관찰할 천부인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자는 아닙니다. 기자가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위해서 1차적 소스를 제공할 수 있지요”

박소령

* [저널리즘의 미래]에 대한 이전 글들을 읽으시려면
– 저널리즘의 미래 1 뉴미디어 시대에 대처하는 뉴욕타임스의 전략, 링크
– 저널리즘의 미래 2 소셜미디어는 저널리즘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 – 미국 CBS 방송국 앵커/기자 Sean McLaughlin 과의 인터뷰, 링크

참고: 뉴욕타임스, 링크

[첫문장, 끝문장]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 존 F. 케네디 (1963년 6월 26일)

“연설가는 설득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신뢰를 줄 수 있는지의 방법과 그들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의 방법을 발견해야 한다. ”
– 키케로, 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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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0년 전 오늘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서베를린으로 날아갑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터키의 미군 기지를 포기합니다. 동베를린과 나뉘어 냉전과 직접 대처하고 있는 서베를린 시민은 안전에 대한 극단의 공포를 갖고 살아갑니다. 혹시 서베를린을 소련이 공격할 지도 모른다는, 미국이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죠.

2. 80%의 서베를린 시민이 모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결국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케네디는 그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연설의 초미에 등장하는 ‘나는 베를린 시민이다’는 정치인의 연설문의 백미 중 백미라 할 수 있습니다.

3. 케네디는 서베를린 시민들이 필요할 때 갔습니다. 미국을 포함한 자유국가가 그들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방어를 넘어섭니다. 그리고 불안에 떠는 시민들에게 동일체라는 정체성을 심어주었습니다. 메시지는 군더더기가 없이 명쾌하고 분명합니다. 베를린 시민은 이후 다른 대통령에 의해 ‘세계시민’으로 발전하지만 포괄적이서 오히려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4. 케네디 이후 거의 모든 미국 대통령이 서베를린/베를린을 방문해 연설을 했습니다. 훌륭한 연설도 있었지만 케네디의 연설을 넘어설 수 없었습니다. 얼마 전 오바마도 대통령이 되어서는 처음으로 베를린 연설을 했습니다. 실패했습니다. 오바마가 필요할 때 갔고, NSA 도청으로 감정이 좋을 수 없을 때 갔고, 간 이유가 명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늘과 땅 차이의 연설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5. 케네디는 그 후 다섯 달 후 암살당합니다. 그러나 서베를린 시민들은 영원히 그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유민영

<연설 전문>

서베를린이 지닌 불굴의 정신을 세계에 알려주신 시장님의 초청으로 베를린을 방문하게 돼 영광입니다.

2000년 전 가장 훌륭한 자랑거리는 “나는 로마 시민입니다”였습니다. 이제 자유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자랑거리는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독일어)”입니다.

세상에는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간의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이해를 못하거나 또는 이해를 못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베를린으로 오라고 합시다. 공산주의가 미래의 흐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베를린으로 오라고 합시다. 유럽 일부 지역에선 공산주의자와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에게 베를린으로 오라고 합시다. 공산주의는 나쁜 제도지만 그것이 경제를 발전시킨다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베를린으로 오라고 합시다(독일어). 그들에게 베를린으로 오라고 합시다.

민주주의는 많은 장애물을 안고 있으며 완벽하지도 않지만, 우리는 결코 국민을 가두거나 국민이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해 벽을 쌓은 적이 없습니다. 미 국민은 지난 18년의 역사를 여러분과 함께한 것을 영광으로 여긴다는 것을 대서양 건너 수만 마일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미 국민 정부를 대신해 말씀드립니다. 18년간 포위당하고도 서베를린처럼 활기차고 힘차게, 희망과 결의를 가지고 살아가는 도시는 없었습니다. 베를린 장벽이야말로 공산주의의 실패를 전 세계에 보여주는 명백하고 확실한 증거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시장님 말씀처럼 가족을 뿔뿔이 흩어놓고, 남편과 아내, 형제와 자매를 갈라놓고, 함께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떼어 놓는 것은 역사와 인륜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서베를린에서 진리인 것은 전체 독일에서도 진리이듯이, 네 명 중 한 명의 독일인이 자유인으로서의 기본권, 즉 선택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한 유럽에서 지속적이고 진정한 평화가 이뤄질 수 없습니다. 18년간 평화와 신의를 지켜온 독일의 현 세대는 자유로울 권리, 평화롭게 가족과 조국을 통일할 권리를 얻었습니다. 말을 맺으며 여러분께 오늘의 위험을 넘어 내일의 희망을 바라보라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베를린시나 독일만의 자유를 넘어 전 세계의 자유를 바라봅시다. 베를린 장벽 너머의 정의로운 평화의 날과 너와 나를 넘어선 전 세계 인류를 바라봅시다.

자유란 불가분의 것입니다. 단 한 명이라도 노예 상태에 있으면 모든 이가 자유롭지 못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자유를 찾아 이 도시가 하나가 되고 이 나라가 하나가 되고 유럽 대륙이 하나가 돼 평화롭고 희망 가득한 세상에 살게 될 그 날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올, 그날이 오면 서베를린 시민들은 자신들이 20년 가까이 그 최전방에 있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할 것입니다.

모든 자유인은 그들이 어디에 살더라도 베를린 시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자유인의 한 사람으로서 자랑스럽게 말하겠습니다.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독일어).”

사진 포함 연설전문 출처: 중앙일보,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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