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케이스 풍경] 쿠데타가 지나간 자리, 태국 여행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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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

바야흐로 휴가의 계절이다.

아직 떠나지 못해 몸이 근질근질한 분들을 위해
반 발짝 빨랐던 태국여행의 단편을 소개한다.

1. 쿠데타의 나라 태국

올해 여름여행의 장소로 태국을 선택한 이유는 거의 쿠데타로 연결된다.

1-1 4년에 한 번 꼴로 쿠데타가 일어나는 곳에 사는 사람들.
얼마 전 태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난 후 태국에 호기심이 생겼다. 1932년 이후 무려 12번째 성공한 쿠데타다. 실패한 쿠데타 7번을 더하면 4년에 한 번 꼴로 쿠데타가 일어난 셈이라고 했다. 그곳에 사는 태국 사람들이 궁금해졌다.

1-2 남들 가지 않을 때의 여행.
태국 쿠데타 이후 태국 관광객은 급감했다. 언론에 노출된 상황은 대규모 시위와 군부의 강경진압 등이었기 때문에 태국 여행은 위험해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대개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서울역에 대규모 시위가 있는 날에도 바로 그 옆은 평화로워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비수기 여행을 즐긴다. 비행기표만 사면 여행준비가 끝나기 때문이다. 여행객들이 없을 때는 교통을 걱정할 일도, 숙박을 걱정할 일도 없으니 발길 닿는 대로 가면 된다. 그렇다면 태국이 올해 여행장소로 적격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2. 태국의 그녀

“네가 지금 물어본 그 한 마디면, 체포되는 데 충분해.”
여행의 첫 날 태국의 카페에서 만났던 여자애는 쿠데타에 대해 물어본 나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녀의 대답에 왠지 모를 짜릿함을 느꼈지만, 이후로 현지인에게 쿠데타에 대해 물어보지 못 하게 됐다.

그녀는 태국에서 태어났지만 현재 바레인에서 일하고 있고 태국에는 출장을 나와 있는 상태였다. 비교적 자유로운 신분의 그녀에게 처음 이 같은 질문을 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에 따르면 태국 사람들은 쿠데타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 같았다. 사복을 입은 경찰 혹은 군인들이 도처에 있기 때문에 쿠데타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병력이 태국 전 지역에 깔릴 정도로 많지는 않기 때문에 열 개 도시 정도를 통제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내가 갔던 방콕과 치앙마이에는 경찰과 군인들이 참 많았다.

3. 태국에 오는 그 남자

“어 맞아, 쿠데타 이후에 굉장히 조용해졌지. 예전이랑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
지난 5년간 태국을 5번 찾은 니콜라스를 태국여행의 마지막 밤, 카오산로드에서 만났다. 그는 5년 전 처음 태국을 찾은 후 태국이 좋아 거의 매년 찾고 있다고 했다. 배낭여행객들의 메카라고 불리는 카오산로드는 절대 잠들지 않는 거리다. 거리 전체가 음악으로 쿵쿵 울리며 온갖 간판과 상점의 불빛으로 번쩍인다.
여행객들이 주가 되는 곳이기 때문에 쿠데타의 영향력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거라는 예상과 달리 쿠데타의 여파는 카오산로드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았다.

4. 태국 정부과 여행객

한 번도 침략당한 적이 없는 태국의 군부는 외부의 적에 대한 대비보다 내부 질서 유지에 더 집중한다. GDP의 10%에 달하는 관광산업을 태국 정부가 어떻게 지원하고 있는지 경험할 기회가 있었다.

어리바리한 초짜 냄새가 진동했던 여행 첫 날, 나는 연달아 당한 택시 바가지로 슬퍼하고 있었다. 방콕에서 치앙마이로 갈 계획을 세웠던 나는 태국의 국내여행사를 이용해야 했다. 또 바가지를 쓰지나 않을까 걱정하던 차에 태국인 두 명에게서 연달아 국가가 운영하는 ‘여행자 센터’를 이용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여행객들이 합리적인 가격에 여행을 하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라는 설명이었다.

실제로 이 시스템은 합리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가격도 사설 업체보다 20%가량 저렴했고, 기차역에 가는 방법, 기차역에서 게스트하우스까지 가는 법, 게스트하우스 예약 등등 여행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한 번에 해결해줬다.

그러니까, 쿠데타 테마여행에 대해 요약하자면 이렇다.
태국 사람들은 쿠데타 등 정치상황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행객들은 대개 관심이 없다. 오히려 정부의 여행객 시스템에 호감을 갖게 된다.
더 많은 현지인들에게 물을 수 없어 아쉬웠던 여행은 이 느낌을 남긴 채 끝이 났다.

김정현

[내 인생의 책] 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1988년작)

연금술사

1. 이의헌(39, 남, 비영리단체 점프 대표이자 글로벌 IT기업 서베이몽키 한국대표)

점프(http://www.jumpsp.org/)는 차세대 리더의 자질을 갖춘 대학생이 공부에 열의가 있는 다문화가정 청소년들에게 맞춤형 학습 지도를 진행합니다. 그리고 사회 각계각층에서 활약하고 있는 리더들이 대학생 선생님을 위해 멘토링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서베이몽키(http://ko.surveymonkey.com/)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온라인 설문조사 도구입니다.

2. 내 인생의 말

‘내 인생 의 말’은 사실 최근에 바뀌었습니다.

약 3주전 갑자기 배가 아파 병원에 갔고, 수술 후 2주간 입원을 했었습니다. 조사 결과 다행이도 악성이 아니었지만, 조직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나와 가족의 소중함을 많이 곱씹어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수없이 들어왔던 <대학>의 한 구절인 ‘수신제가치국평천하’가 가장 가슴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3. 책 소개

“제가 파악했을 때, 책에 있는 내용은 하나에요. 책에서 주인공이 목동인데, 목동이 꿈을 찾아서 헤매요. 책은 목동이 보물을 찾아서 떠나는 여정을 그리고 있죠. 제가 감명 받은 이 책의 메시지는, ‘가까운 데에 있다. 중요한 것은.’”

4. 내 인생의 책으로서, 연금술사에 대한 인터뷰

4-1 왜 연금술사가 인생의 책인가요?

어떤 책이든, 책을 읽을 당시의 상황과 맞닿아 있을 때 큰 임팩트를 느끼는 것 같아요. <연금술사>를 읽었을 당시가 그 책을 받아들이기에 최적의 시기가 아니었나 합니다.

당시 저는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다가 제대한 후 유럽여행을 갔어요. 당시 유행이, 남자들은 군대 갔다 오면 배낭여행을 한 번 갔다 오고 정신 차려서 복학해서 공부하는 거였어요. 그런데 남들처럼 유럽여행을 2달 했는데, 사실은 정상적인 학생이면 공부를 하겠다는 열망이 넘쳐야 하는데 그런 마음이 안 드는 거예요. 놀고 싶고 계속. 그래서 어떻게 할까 고민을 했어요. 군대 가기 전 학점이 좋지 않았는데, 이 상태로 돌아가도 별 다를 게 없겠다 싶었거든요. 그 때 이스라엘의 개인농장에서 일하다 온 형을 파리에서 만나게 됐어요. 그 형에게 주소를 얻은 후 무작정 이스라엘로 넘어가서 100일 동안 농사를 지었죠. 해 뜨면 일하러 나가고 해 지면 일을 마치는 생활을 했어요. 군대를 제대한 직후였는데도 힘들었어요. 그 때 이 책을 읽게 됐어요. <연금술사>는 여행 중에 만난 여행자가 제 고민을 듣고 건네준 책이었는데 그 때 읽게 된 거죠. 당시 저는 진로와, 삶에 대해서 고민을 하던 때였는데 책의 메시지가 큰 울림이 됐죠.

그 책을 읽고 저는 이집트로 넘어갔어요. (이 책의 주인공은 이집트 피라미드로 가는 꿈을 꾸는데) 이 곳에서 만났던 사람도 제가 이 책을 더욱 감명 깊게 느끼게 된 계기가 됐어요. 교대를 졸업한 후 교사로 살다가 교사로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영국에서 플로리스트를 하고 있는 일본인을 이집트에서 만나게 됐어요. 그 책에서 감명 받은 메시지가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있다’라는 것인데, 자신 안의 메시지를 듣고 실제로 실천을 하는 사람을 만난 것이죠.

4-2 이 책이 삶의 어떤 점에 영향을 주었습니까?

중요한 것은 가까운 데 있다,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있다는 메시지에 감명을 받았던 것인데요, 아직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외부에 대한 동경’과 ‘소중한 것은 가까운 데에 있다’는 두 가지의 생각의 균형을 맞출 수 있게 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가끔 이 책이 생각나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제가 이 책을 읽었을 때 22살이었어요. 그 이후에 진로가 사실 많이 바뀌었죠.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많이 찾아서 하게 된 거예요. 예를 들어서 미주한국일보에 간 것도, 그냥 그 당시에 사회적인 일반 통념으로 보면, 별로 현명한 결정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거든요. 왜냐하면 메이저 언론사를 갈 수도 있는 건데, 저는 그것보다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당시에는 유학을 하고 다시 한국에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돈 문제가 있으니 미국에서 돈을 벌면서 생활하면 더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결정한 거죠. 그 당시 제 수준에 맞는 생각이에요.

제가 미국에서 회사를 다닐 때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 때 그런 생각을 하게 됐죠. 미국에 사는 사람들이 다 느끼는 건데,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러고 있나. 어머니도 이렇게 보내드리면 너무 황망할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내 안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죠. 그래서 한국에 돌아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또 하나 말하자면, 처음에는 유엔 같은 데 들어가서 중국이나 북한에서 일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것보다는 우리나라에 돌아가서 우리 커뮤니티를 만들자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띵크 글로벌리, 액트 로컬리’라고 할까죠.
물론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수많은 경험들이 영향을 미친 거죠. 책 한권 때문은 아니고 많은 경험들이 유기적으로 엮어진 거죠. 근데 이 책은 지금까지 내 인생을 볼 때, 가장 큰 터닝 포인트에서 만났던 책이에요. 그래서 살아가면서 책 생각을 많이 해요.

4-3 책을 읽는 습관이 있으신가요?

요새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는데, 지하철역에 스마트도서관이라는 게 생겼어요. 기계 안에 책이 있어요. 도서관처럼 만들어놓은 거죠. 거기에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꺼내서 읽죠. 거기서 책을 이것저것 읽으려고 노력을 해요.

5. 에이케이스 촌평

어떤 고민을 할 때, 적절한 책이 나에게 ‘찾아오는’ 그런 경험 있으신가요?

[첫문장, 끝문장] 어디에도 없던 곳 인도양으로, 이희인 (2013년작)

– 첫문장: “저녁을 바라볼 때는 마치 하루가 거기서 죽어가듯이 바라보라. 아침을 바라볼 때는 마치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듯이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자이다.”

– 끝문장: “바닷가의 모래가 부드럽다는 것을 책에서 읽기만 하면 다 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맨발로 그것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감각으로 먼저 느껴보지 못한 일체의 지식이 내겐 무용할 뿐이다.”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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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책 안의 글, ‘책을 펴내며’ 의 첫문장-끝문장을 먼저 소개합니다. 광고 카피라이터이자 여행가인 이희인씨가 스리랑카와 남인도 여행을 다녀와서 쓴 책입니다. 책 제목, 표지사진, 타이포그래피가 왠지 눈에 익은 것 같지 않나요? 올해 초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대한항공 스리랑카/몰디브 취항기념 광고’에 사용된 바로 그 내용입니다. 이 책 안에 담긴 김유철 사진작가의 사진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맑아지는 기분입니다.

한주의 한가운데인 수요일, 저 멀리 인도양으로 떠나는 여행 계획을 상상하면서 기운내시면 어떨까요?

출처: 도서출판 호미, 2013년 초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