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리뷰] 칸딘스키를 영상에 담는 단 하나의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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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상을 우연한 기회에 보고 소름 돋는 경험을 했다.
칸딘스키 그림에 대한 영상인데, 예술작품을, 그것도 추상화를 이렇게 한 큐에 설명할 수도 있구나 생각했다. http://vimeo.com/22220131 꼭 보시라.

나의 미술에 대한 지식은, 문과 고등학생의 상대성이론에 대한 지식만큼이나 얕기 때문에, 이 영상에 내가 전율했던 이유는 한 문장이면 족하다.

“칸딘스키 추상화 탄생과정을 영상에 담았다.”

구체적으로 말하기 위해, 영상을 글로써 묘사해보겠다.
‘영상은, 칸딘스키의 가장 유명한 <구성8>의 구성요소 하나하나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그 요소 하나하나는 경쾌하게, 자신의 교유한 떨림대로 흔들린다. 경쾌한, 그렇지만 의미는 알 수 없는 깨끗한 음악이 BGM으로 깔린다. 동그라미들은 비누방울처럼 부드럽고 천천히 떠오르고, 세모는 자기 자리에서 지글지글 움직인다. 물결무늬는 물결처럼 물결친다.’

내가 알고 있는 칸딘스키 예술작품 탄생과정은 다음과 같다.
“칸딘스키는 “미술은 자연의 모방이 아니라 색채와 선의 효과만으로 더욱 순수해지지 않을까? 실제 대상을 지니지는 않았지만 음악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고 생각했다. 그는 시각적인 것과 청각적인 것이 하나로 융합되어 감상자의 영혼과 교감하는 ‘총체적 예술’을 추구했다.”
(유현영, <칸딘스키, 음악과의 아날로지>)

즉, 칸딘스키 예술의 절정은 음악을 빼놓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는 개별로서 아무 의미도 없는 음표들의 집합이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낸다는 것에 탄복한 듯한데, 그 ‘탄복’을 미술에 끌어들였다. 즉, 개별로서 아무 의미도 없는 선, 면, 동그라미, 네모, 세모 등이 적절하게 모여서 아름다움 자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다음의 묘사도 보자. 위 묘사에서 이어진다.
‘북이 둥둥 울리는 것 같은 음이 들리면 배경이 우주로 바뀐다. 그래, 이건 우주를 표현한 것인가 봐. 그러면, 지금껏 없었던 중력이 일시에 생긴 것처럼 땅으로 떨어진다. 네모들은 얼음틀 안에 얼려진 얼음들처럼 모서리를 맞대고 꼭 붙어 있다가, 땅에 닿는 순간 와르르 해방된다.’

칸딘스키가 해당 그림을 그렸던 시기에 그는 ‘신비적이고 환상적인 우주’를 화폭에 담아내려고 의도했다. 물론 점과 선, 도형들로 말이다.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영상의 배경은 우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이런 순간도 있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동그라미가 큰 원이었다가 작은 원 두 개로 나뉘고, 다시 뭉쳤다가 두 개로 나뉜다. 그럴 때는 높고 청명한 소리가 줄곧 들리다가, 낮고 울림이 깊은 음성이 들리며 네모가 끝없이 가라앉는다. 물 컵에 빠진 발포비타민처럼 조그마한 공기들을 위로 물 밖으로 올려 보내며.’

동그라미가 포커싱될 때, 네모가 움직일 때, 곡선이 물결칠 때, BGM은 각각 고유한 소리를 낸다. 각각이 어떤 음표를 상징하고 있을 것이기에, 칸딘스키가 그림을 그릴 때 칸딘스키의 뇌를 울리고 있었을 음악을 상상한 것이다.

추상화만큼이나 영상이 아름다울 수도 있다.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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